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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강원 북부지역에 쏟아져내린 폭우가 수십명의 인명을 앗아가고
3만5천여명의 이재민을 낸지 26일로 한달을 맞는다. 수해지역 주민들은
그동안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를 복구하느
라 온힘을 쏟았지만 아직까지 길이 끊기고 침수됐던 논밭이 방치돼 있
는 지역이 적지 않다. 수해 한달을 맞아 경기 연천-문산과 강원 철원지
역을 둘러보았다. < 편집자주 >.
:철원:.
철원지역은 아직도 곳곳에 수해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철원군 근남면 면소재지로 들어가는 육단 1-2교는 끊어진 채로 방치돼
있었다. 차량이 지날 수 있도록 다리 아래로 흙으로 만든 임시 통행로
가 마련돼 있을 뿐이었다. 면소재지에서 잠곡리로 가는 왕복 2차선 포
장도로 3∼4곳은 1차선으로 줄어 있었다. 아스팔트도 30∼40㎝의 요철
로 구겨져 있었다.
잠곡천 옆 논밭은 얼핏보기에는 물이 줄어든 넓은 강 같았다. 산에
서 굴러내려온 직경 20㎝에서 1m에 이르는 수십만개의 바윗돌이 잠곡천
을 막고 논을 삼킨 것이었다. 그렇게 잠긴 논과 밭이 전체의 3분의2.
잠곡리 주민 김상규씨(68)는 『주민 1백여명이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산
중턱에서 3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다』면서 『피해가 너무 커서 보상이 제
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옥 2천채중 1천1백여채가 물에 잠겼던 철원군 서면의 경우 주민
수십가구는 아직도 새마을회관, 교회 등에서 기거하거나 남대천변에 천
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다. 와수리 남대천 둑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김선녀씨(57·여)는 『지금도 새벽녘이 되면 가끔 가슴이 뛰어 잠을 깨
곤 한다』고 했다. 장충무면장(52)은 『이번 주내로 컨테이너 34개를 들
여와 주민 주거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나 컨테이너를 받는 주민은 그나마
나은 형편』이라며 『정부 지원금과 금융기관 융자금이 현재 책정된 것보
다훨씬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철원군은 지난 수해때 가옥 1천6백여동이 파손-침수되고,
농경지 6천4백㏊가 유실-매몰-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현재는 차량이
다닐수 있도록 겨우 응급복구만 마친 상태. 파손된 도로와 다리를 새로
건설하거나 보수하는 영구복구는 내년 상반기가 돼야 끝날 것으로 군은
예상하고 있다. 근남면 잠곡리의 일부 가옥은 전화와 전기가 아직도
개통되지 않은 실정이다.
:연천:.
차탄천 범 람으로 전체 주택의 25%가 파손되거나 침수되고, 전체
농경지의 20% 정도가 유실-매몰-침수되는 피해를 입은 연천군도 현재
응급복구만 마쳤을 뿐이다. 수해 주민들은 구호품외 보상-지원비는 아
직 지급받지 못한 실정.
경기 연천군 연천읍 차탄2리 차탄천 부근 둑방쪽에는 아직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4가구가 있었다. 집이 완전히 부서져 갈 곳을 잃었기
때문. 담배만 줄곧 피워대던 최금룡씨(70)는 『돈이 뭐가 있어서 집
을 새로 짓겠어.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올 겨울을 이곳
텐트에서 나야할 것 같아』라고 말했다.
연천군 전곡읍 전곡6리 한탄강국민관광지. 강을 따라 1㎞에 걸쳐
퍼져 있던 80여개의 건물중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집
터만 덩그러니 남은 곳부터 기둥만 흉하게 서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상인 50여명은 현재 군에서 나눠준 텐트를 치고 생활하고 있었다. 『강
둑을 따라 빽빽히 서있던 아름드리 나무가 뽑혀나가 강바람이 너무 세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이 추워한다』고 했다. 보트대여업을 했던 박일돈
씨(37)는 『두달 벌어 아쉬운 소리 안하고 1년을 살아왔었다』면서 『장
마가 일찍 끝나고 무더위가 올것이라는 의 예보를 믿고 물건을
재워 놓았다가 완전히 망해버렸다』고 말했다.
【철원-연천=김홍기기자】.
:문산:.
서울역에서 매시 출발하는 경의선 비둘기호에 몸을 싣고 파주역을
지나 문산역에 다다를 즈음 누런 먼지를 일으키며 복구작업에 여념없
는 포크레인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파주시에서 가장 피해가 심했던
문산읍내의 경우 일단 겉보기에는 평온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수돗물
과 가스, 전기의 공급이 지난 3∼5일부터 재개된데 이어 지난 14일쯤
전화통화가 가능해져 응급복구는 마무리된 상태.
10여대의 구명보트가 인명을 구조하던 읍내 시가지는 자동차들과
재건축으로 부산했다. 2층 일부까지 침수됐던 외기노조아파트 주변은
가로수들에 남은 흙과 여기저기 붙어있는 세일포스터들이 이곳이 수해
지역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때 1천4백여가구 3천7백여명에 달했던 이재민들은 문산초등학교
에 임시거처를 마련한 30여가구 1백여명의 주민 외에는 대부분 집안을
정리하고 귀가를 한 상태다. 남아있는 이재민들은 대부분 피해가 가장
심했던 문산4리 일대 주민들. 집으로 돌아간 경우도 허물어진 흙담집
벽에 임시로 베니어판을 대고 도배한 뒤 살고 있는 이복기씨(59)처럼
「난민」생활 수준을 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민들은 수해의
여파로 문산읍은 물론이웃한 법원리까지도 셋방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
이라고 말했다.
수재민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특별한 보상이나 대책없이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 외기노조아파트 5동 지하에서 슈퍼마켓을 운영
하다 수해로 모든 것을 잃었던 노두리씨(43·여)는 『먹고 사는 것이
급해 일단 빚을 지고 장사를 다시 시작했다』면서 『한푼이 아쉬운 처지
에 보상금마저 제때에 지급되고 있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문산=노주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