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D롬작업도 끝나...한자입력 프로그램 개발 `전산화'토대 ###.

성서가 라틴어로만 읽힐 때 성서는 특권층의 텍스트였다. 그것이 번역
되면서 종교혁명이 일어났다. 누구나 성경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
로의 신앙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된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고전들은 시간의 장벽 속에 갇혀있다. 뜨문 뜨문 중요고
전들의 번역소식이 학계로부터 전해져 오지만 장님 코끼리만지기 수준을
맴돌고 있다. 그나마 번역된 것들도 뭘 어떻게 번역했는지 확인조차 불
가능한 졸속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역사가 궁금했고 따라서 우리의 고전들을 읽고 싶었
다. 그러나 우리를 가로막은 시간의 장벽은 다름아닌 한문이었다.

우리 학계는 최근 끝난 「조선왕조실록」의 완역과 CD롬화를 통해 장벽
일부를 허물어낸데 이어 「삼국사기」의 완역과 CD롬화도 끝냄으로써 다시
한번 시간의 벽 일부를 허물어뜨리는 성과를 올렸다.

한국사 사료연구소(소장 허성도 중문과 교수)는 7년간의 작업
끝에 1천7백여개의 주를 달고 한문의 표점을 찍은 김부식 지음 「삼국사
기」상하권을 한글과 컴퓨터사에서 원문과 함께 번역해 펴냈다. 연구소는
CD롬화 작업이 끝난 부산물로 책을 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구자들에게
는 CD롬화가 더욱 의미있겠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당연히 번역작업이
더 중요하다.

물론 지금까지도 여러 종의 「삼국사기」 번역본이 나왔다. 그러나 이번
허교수가 주도한 번역작업은 원문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뒷받침된 「완전
번역」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고전번역의 귀감이 된다.

「삼국사기」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새삼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주목을 끄는 것은 허교수 개인의 학문적 노고이다. 이 작업은 허성도(48)
라는 이름 석자와 함께 기억될만 하다. 중문과 교수인 그로서는
일종의 외도이기도 한 「삼국사기」 완역 및 전산화 작업은 그러나 「필생
의 과제」였다.

대만대 유학을 마치고 교수생활을 시작하던 80년 당시로서는 8비트 애
플 컴퓨터 수준이었지만 「국학자료의 전산화」에 컴퓨터가 결정적 기여를
할 것으로 「예감」한 허교수는 정부 학술기관 문화재단 등에 후원을 얻기
위해 손을 벌리고 다녔지만 「황당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결국 82년부터 시민모금을 시작했다. 한국사사료연구소판 「삼국사기」
서두에는 모금에 참여해준 542명의 이름이 열거돼 있다. 그밖에 2명의
익명 후원자도 있다. 대학교수와 학생은 물론이고 회사원 개인사업자 주
부정당인 교사 재미교포 판사 검사 의사 간호사 영양사 등 말 그대로 각
계각층의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허교수는 이 중
에는 단골술집 주인도 있다고 밝혔다.

이 작업과 관련해 허교수의 이름이 기억돼야 하는 이유는 또 한가지가
있다. 그는 당시로서는 우리나라에 없는 한자입력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
했다. 89년부터 3년에 걸쳐 지금은 안쓰는 고어한자를 비롯해 국학사료
입력에 반드시 필요한 한자를 찾아내는대로 입력시켜 모두 1만5천여자를
그려냈다.

이 때 완성한 한자프로그램 「한사연 한자 부호계」는 무료로 한글과 컴
퓨터사에 제공돼 92년 10월 「아래 한글 2.0」버전이 나오면서부터 함께
실려있다. 이 프로그램은 92년 김용옥씨가 소장으로 있는 한국사상사연
구소가 펴낸 색인집 「삼국유사인득」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했
다.

물론 허교수의 작업은 「삼국사기」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이미 입력을
끝낸 것만 해도 「삼국사기」를 비롯해 「고려사」, 「정종실록」, 「태종실록」,
「문종실록」, 「단종실록」 등이다. 이에 대한 교정 및 교감작업이 끝나는
대로 CD롬을 펴낸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허교수는 이번에 나온 책 「삼국사기」초판을 모두 거둬들였다.
일부 연도표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7년을 공들인
작업인데 단 하나의 오류도 없는 책을 내놓고 싶습니다.』 그래서 독자들
은 한달을 기다려야 「완전한」 번역본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무렵 CD
롬 「삼국사기」도 함께 출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