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복싱서 2회탈락…아들통해 재도전 ===
=== 애거시-아버지위해 올림픽 출전 금획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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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드디어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4일 테니스 남자단식 결승이 열린 스톤마운틴테니스
센터.

「코트의 마술사」 안드레 애거시(26)가 세르히 브루게라(스페인)를
1시간18분만에 3대0(6-2,6-3,6-1)으로 완파하며 금메달을 확정짓자 애
거시의 아버지 마이크 애거시(65)는 아들을 힘껏 끌어안으며 기쁨을 감
추지 못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1번시드를 배정받은 애거시는 이날 승리로 24년 빈
센트 리차즈 이후 72년만에 올림픽 테니스 남자단식서 우승한 미국인이
됐다.

수많은 대회를 휩쓸며 세계테니스계를 호령하는 아들의 올림픽 우승
에 마이크 애거시가 「호들갑」을 떠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올림픽 드림」을 아들이 대신 실현했기 때문. 철저한 프로
인안드레 애거시가 돈벌이가 별로 안되는 올림픽에 출전한 것도 아버지
의 못다이룬 꿈을 대신 풀어드리기 위해서였다.

「에마노울 애거시」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그는 이란 복싱대표로 48년
에는 밴텀급으로, 52년에는 페더급으로 올림픽무대에 섰다. 그러나 메
달권은 고사하고 두번 모두 1회전 탈락에 그쳤다. 올림픽을 마친 뒤 52
년 미국으로 이민을 간 마이크는 몇년 후 자신의 아이들에게 테니스를
가르쳤다.

애거시의 누이는 쉴 새 없이 테니스를 치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질려 도망쳐 버렸을 정도로 마이크 애거시의 집착은 대단했다. 『남의
나라에서 대접받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스포츠에서 1인자가 되는 것뿐』
이라며 안드레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안드레는 아버지의 뜻대로 16세때인 86년 프로에 입문, 테니스 신동
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화려한 복장과 액세서리, 길고 치렁치렁한 머리
등 그의 스타일은 사실 그의 아버지가 「배후조종」한 작품이었다.

준결승을 네바다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TV로 지켜봤던 마이크 애거
시는 대견스런 아들의 우승모습을 직접 보기위해 안드레에게 알리지도
않고 갑자기 애틀랜타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는 40여년전 두번의 올림
픽에서 흩어졌던 자신의 꿈을 되찾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