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예 민...한국 그리울 거예요 ////
/// 미혼...전통혼례식-웃어른 공경등 유교문화 인상적 ///
/// 미공무원은 정년 없어...그동안 경험모아 책쓸 생각 ///.
공무원 근무 54년. 그중 한국 근무만 33년. 금년 나이 만 78세. 미국
최장수 여성 공무원이었던 주한미군사령관 비서실의 데이지 R 벡 여사가
은퇴, 지난 9일 고향으로 돌아갔다. 벡여사는 대통령으로부터 은
퇴축하편지를 받기도 했으며 대통령은 국방부장관을 통해
표창장을 수여했다. 사회부 김효재차장과 함영준국방팀장이 벡여사가 떠
나기전 서울 용산 미8군 기지내에 있는 드래곤힐 호텔에서 만나 33년동
안의 한국근무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 웃옷 좌우에 김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메달과 2002년 월드컵 배지, 82년 전미국 공무원 가운데 선발하는
「올해의 비서」 배지, 50년 근속 배지 등을 주렁주렁달고 나온 벡여사는
『고향에 돌아가도 공식행사나 파티에 갈 때엔 이 배지들을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겠다』고 했다. < 편집자 주 >.
-- 한국에서만 33년간 근무하다 명예롭게 은퇴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게 됐습니다. 한국을 떠나는 소감이 어떻습니까.
『슬퍼요. 한국을 좋아했거든요. 한국은 참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내
제2의 고향이지요. 미국에 가면 한국이 그리울거예요.』.
-- 최장수 미국 여성공무원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1942년부터 근무해왔으니 54년간 근무한 셈이죠. 얼마전 클
린턴대통령이 저의 은퇴를 축하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당신의 친구 빌」
이라고 쓰여있더군요. 그래서 저도 「내 친구 빌」이라고 말합니다.』.
--78세란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 보입니다.
『일을 하면 늙지를 않지요. 아직도 몇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요. 하지만 여생을 좀 편히도 보내고 싶어요. 또 정리할것도 있고요. 주
한미군사령부에는 한국인 공무원들도 많이 있는데 모두들 열심히 일하더
군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너무 일찍 은퇴하는 거예요. 미국엔 정년퇴직
이란 제도가 없지요. 자기가 일할 수 있을 때까진 일해요.』.
--은퇴후 받게될 연금은 어느정도인가요.
『지난해 연봉이 2만8천달러 정도였으니 그 80를 매년 연금으로 받게
됩니다.』.
--한국에서 지내시는 동안 잊지 못할 추억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1976년이던가요? 장으로부터 명예 민증을 받았던 것이 기
억납니다. 아주 멋진 황금열쇠를 받고서 시장님과 좋은 점심을 하고 파티
까지 열어줘 흥겹게 즐겼습니다. 그분 성함이 김현옥씨…, 맞아요. 그분
은 지금 어느 시골학교 교장으로 계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88 서울올
림픽도 빼놓을수 없죠. 그때 개회식, 폐회식 모두 참석해 구경했어요. 참
멋졌죠.또 수영장에도 가 우리 미국선수가 금메달따는 것을 구경했죠. 루
가니스였어요. 바로 제 코앞에서 터치를 하더군요. 그때 메달딴 미국선수
가 후에 () 환자로 판명됐죠. 어제 TV에 나온 그를
봤어요.』.
--63년에 한국에 왔으니 그동안 모두 14명의 주한미군사령관을 겪으신
셈이군요. 공인으로서 주한미군사령관이 아닌 사인으로서 사령관들은 어
떤 사람들이었나요.
『미 육군 대장이라면 갖춰야 할 덕성과 지성을 모두 겸비한 장군들이
었지요.물론 개인적 습관은 틀리죠. 어떤 분은 담배를 좋아하시고, 어떤
분은 술을 즐기시고….또 골프를 좋아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테니스를 선
호하는 분도 있으시고.』.
--그래도 특히 좋아하신 분이 있을 것이고 개개인 평이 있지 않겠어요.
『게리 럭 사령관을 좋아합니다. 리브시 사령관(1984∼1987년 재임)도
매우 친근하고 자상하신 「가부장형」으로 기억합니다. 리브시사령관은 골
프를 매우 좋아했는데 골프장에서 위관급 장교들을 만나면 같이 농담도
하고 그린피도 내주곤 했지요.또 위컴사령관(1979∼1982년)은 위대한 사
령관이시죠. 그분은 나중에 육군참모총장까지 되셨는데, 한번은 추수감
사절날 위컴사령관께서 저희들 스탭요원 30여명을 관저로 초청해 파티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때 우리는 밤늦게까지 TV도 보고 카드놀이도 하고 춤,
노래를 즐겼어요. 참으로 흥겨운 밤이었죠.』.
--처음 한국에 왔을 땐 5.16 직후로 한국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습니
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시면 격세지감이 나실텐데요.
『가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좋았어요. 특히 한국의 문화가 매
력적이었지요. 그래서 전 용인 민속촌을 자주 갔습니다. 거기서 「공연」
하는 한국의 전통결혼식은 가장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여사는 아직 미혼 아니십니까.
『(웃으면서) 네, 오랫동안 멋진 상대를 기다려왔었죠.』.
--지금 서울은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매우 현대화됐습니다. 현대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요.
『네, 그래요. 물론 진보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좋은 점도 많지요. 나
는 63빌딩을 매우 좋아합니다. 남산타워도 좋아하구요.서울을 한눈에 내
려다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남산 타워는 꼭대기에
올라가면 빙빙 돌아가죠. 한번은 제 친구가 와서 남산타워로 데려가 구
경시켜주고 있는데 한국사람들이 잠깐 모델이 돼 달라고 하더군요. 아마
도 전망대를 통해 서울전경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관
광포스터로 쓰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포즈를 취해주니까 우리가
마신 오렌지주스 값을 대신 치러주더군요. 모델료 치고는 참 쌌죠.』.
--최근 한국문화도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때로 한국의 과거의 모습
이 그리울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한국의 젊은 사람들중 일부는 미국의 안좋은 습관을 무작정 받아들
이더군요. 심하게 노출하고 다닌다거나 커다란 셔츠를 헐렁헐렁하게 입
고 다닌다거나…. 한국문화 가운데에는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비슷한 한
국의 명절 추석때 젊은이들이 어른들에게 구부리고 인사하는 것(절하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미국사람들은 부자지간에
도 이름을 부르는데 한국인들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매우 존경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좋은 전통이지요.』.
--한국말을 하십니까.
『아뇨. 아주 조금. 한국말은 너무 어려워요. 한국말을 하려면 때로
머리가 꽉 막혀버리곤 합니다. 유럽말들은 모두 라틴어가 원조라서 그
렇게 어렵지 않은데….』.
--남성들 틈에 끼어 근무하다 겪은 일들도 많을텐데요.
『한번은 헌병들이 고양이들을 데리고 가길래 나는 무심코 「고양이
집(Cat's house)」에 데려가느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그들은 서로 쳐다
보며 박장대소하는 거예요. 영문을 몰라 멍청히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글쎄… (편집자주:영어로 cat's house는 은어로 매춘부 집을
뜻함). 돌아가면 이런 일들을 모아 책을 쓸 계획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