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진노로 공중분해...논리엔 타당성, 현실과 큰 괴리 ###.

지난 5월초 어느날. 기자는 이각범 정책기획수석과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다. 만나게 된 경위는 밝힐 수 없지만 서로간에 건설적
인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자리였다. 그는 자신이 추진하고자 하는 소위
「21세기 도시구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때 그는 비지니스맨처
럼 세련미를 풍기면서도 학자출신 특유의 날카로움을 강하게 풍겼다.

『지금과 같은 도시개발방식으로는 참다운 21세기를 준비할 수 없
어요.』 이수석은 소득 1만달러에 걸맞는 도시개발과 환경조성이 절실하
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갈길은 분명한데 현실이 뒤따라 주지 못해 안
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과감한 발상의 전환」과 「개혁적인 정
책추진」을 강조했다.

비밀리에 추진돼다 갑자기 불거져 나온 「21세기 도시구상」. 그러
다가 대통령의 호된 꾸지람과 함께 「공중분해」한 이 정책은 이
렇듯 이각범 정책기획수석의 개인적인 「비전제시」 차원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그의 논리는 타당성을 갖고 있었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관
점에서 바람직하다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다. 기자는 그 때 시오노 나
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기술한 「로마의 도시계획」이 생각났었다.

기원전 7백여년전부터 도시 인프라를 갖춘 지금의 로마만들기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던 것. 그리고 이미 1200년대부터 시작된 의
도시계획도 떠 올랐다. 하지만 이수석의 얘기를 들으면서 점차 현실을
무시한 일방통행식이라는 의구심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의 구상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선은 현재의 우리나라 도시들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주장에서 출발한다. 즉 70년대 이후 도시면
적이 2배 이상 늘어났는데도 불구, 총체적인 도시경쟁력은 오히려 퇴보
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이 서울을 「사업하는데 가장 장애가 많
은 도시」라고 꼬집은 예도 들었다. 생활환경과 정보, 비지니스환경, 사
무환경, 시장등 어느 부문 제대로 된 곳이 없다는 것.

『도시로의 인구집중을 도시계획이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예요. 1인당 도로길이가 주요 경쟁국에 비해 형편없이 낮고,
이때문에 만성 교통체증과 물류난이 심각합니다. 여기에 갈수록 심각해
지는 환경오염과 도시의 관광자원의 빈곤 등 무엇하나 21세기형 도시에
가깝게 갖춰 놓은 것이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서둘러야 합니다』라고 그
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도시의 난개발로 옮아갔다. 『현행 도시개발방식으로는 개발
의 조짐만 보여도 토지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요. 이러다보
니 땅값 보상을 위해 고밀도 개발이 불가피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겁니다.』 이수석은 고밀도개발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리
고 앞으로 도시지역이 늘어날텐데 지금처럼 난개발할 것이 아니라 신도
시 40∼50여개를 계획도시로 만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게다가 장기적
으로는 동경처럼 수도 서울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도 개진했다. 하지만 그를 만난지 두달도 채 못가서 이수석의 구상
은 백지화됐다. 논리자체로는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인데, 어찌해서 공
중분해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상은 좋았지만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무
리라는 지적을 한다.

실무 작업을 담당했던 건설교통부 한 관계자는 「취지에 공감한다」
고 전제하면서 다음과 같은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토지주들의 반발
을 감당할 수 없어요. 이수석의 얘기대로라면 기존 토지의 건축물 용적
율과 건폐율을 낮춰야 하는데 누가 여기에 동의하겠어요. 오히려 서민
들의 재산권을 압박하게 돼 도시개발수요를 억제하는 결과를 낳을 우려
가 있어요』. 용적율과 건폐율이란 일정 면적의 대지에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연면적. 따라서 도시환경을 이유로 용적율등을 낮게 규제하다
보면 당연히 건물높이가 낮아져 지주들의 재산권을 억압하는 결과가 된
다.

이 관계자는 『잠실재건축지구를 봐요. 가 고밀도는 안된다
고 발표를 해도 주민들은 막무가내 아닙니까? 자기 땅 가지고 있는 사
람이라면 누구나 더 높게, 더 많이 짓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데 지금
당장 억제하라면 정권유지 자체가 어려워져요』라고 부연 설명한다. 또
땅의 효용을 낮추다보니 땅값 상승과 임대료인상을 초래할 가능성도 많
았다. 게다가 「과연 지금이 생활의 질을 추구할 수있는 단계에 있느냐」
의 시점판단에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말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84.2%로 상당히 높아진 것 같지만
실상 주택시장의 뇌관이라 할 수 있는 서울은 69.7%정도에 불과해요.』
국토개발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전국민의 45%가 수도권에 살고 있고
이들의 주택문제는 더욱 절실해 지고 있는 시점에서 규제를 앞세워야
하는 일종의 개발억제 논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지적하기도 했
다. 서울등 수도권의 삶의 질의 현주소는 1만달러보다 훨씬낮다고 봐야
하는데 마치 선진국 도시환경을 지금 당장 조성해야 한다는 논리자체가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는 얘기다.

정책추진절차도 문제가 많았다. 혁명적인 정책이라면 비밀리에,
그것도 전격적으로 단행해야 하는데 도중에 정책내용이 사방곳곳으로
새 나가는 바람에 차질이 빚어지고 만 것이다. 또 반발을 어떻게 무마
할지에 대해서도 전혀 고려가 없었다.

결국 뜻은 좋았지만 과정이 부실했고, 시점의 선택과 정책추진의
테크닉이 못따라가 꽃을 피우지 못한 셈이 돼버렸다. 「이각범 해프닝」
은 학자출신의 정책가들이 「상아탑의 이상」을 「현실이라는 그릇」에 담
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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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각범 누구인가… 87년부터 YS와 인연, "현실 모른다"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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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고, 사회학과 출신, 독일 뷜레펠트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교수. 해군 간부후보생 특교대 출신으로 해군 중위 제대. 이각범
수석의 약력이다.

그가 에 들어오게 된 배경은, 일찍이 87년 대선때부터 YS 진영
에 참여한 교수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인 듯하다. 박세일 사회복지수석
과도 비슷한 연유로 잘 아는 사이. 그의 「정책기획수석」 전임자가 박 수
석이다.

이 수석은 취임 후 반년이 지났지만 아직 특별한 「업적」은 없다. 그
가 취임 후 처음 착수했던 일은 「세계화」의 개념에 대해 새삼스럽게 이
론적 배경과 당위성을 설명하는 자료를 소책자로 만든 것이었다. 그 다
음으로 손댄일은 국토종합개발 문제였다. 건설 차관을 지낸 국토
개발연구원장과 함께 추진하다가 건설교통부측으로부터 제동을 받은 것
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쩌면 이번의 「21세기 도시 구상」은 그 후속편(?)이거나 개정판(?)
이었는지 모른다. 이 수석은 사회학자이긴 하나 독일에서 공부할 당시
「도시 설계」 등에 관해서도 공부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수석이 평소 자신의 주요 과제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정보화」 추
진. 그러나 이 일은 출발에서부터, 경제수석 및 , 과기처 등
의 업무와 어떻게 다르며 업무 영역은 어떻게 나누고 어떤 일은 서로 협
조할 것인가 등을 조정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끌었다.

담당 비서관(서종환·정책기획4비서관)을 받아들인 것이 지난 6월이
었을 정도다. 순전히 「교수 출신」인 이수석의 업무 스타일에 관해, 작년
말 그가 에 들어왔을 때부터 일해왔던 다른 수석들 가운데는 『현
실을 너무 모른다』며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