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노씨측 변호인 집단사임… 피고인 재판 거부 ###.
12.12와 5.18 재판이 막바지에서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7월8일 20차 공판에서 , 피고인의 변호인들이 집단 사임
계를 제출하면서 「장외」로 뛰쳐나가버린 것이다. 전-노 피고인도 『앞으로
사선 변호사를 선임할 때까지 법정에 나오지 않겠다』며 「출정 거부」 의사
를 분명히 밝혔다. 위태위태한 파열음을 내면서도 궤도를 이탈하지는 않
았던 재판이 끝내 파국 직전 상황에 이른 것이다. 변호인들에 의한 「417
호실의 대반란」인 셈이다.
사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피고인석에 앉은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은
그동안 외견상으론 까다로운 「법리 공방」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한꺼풀 벗겨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과 피고인·변호인, 재판부 3자의
치열한 「두뇌 싸움」과 「자존심 경쟁」이 전개되고 있었다. 은 「역사
바로세우기」가 정당했다는 데 대한 인식의 공감과 판결을 끌어낼 필요가
있었고, 변호인은 반대로 「역사 바로세우기」가 정권적 차원의 정치재판임
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려 해왔다. 또 재판부는 이 역사적 재판의 진행과
판결에 한치의 흠결도 없음을 보여주려고 애써왔다.
이번 변호인 집단 사임도 외형적으론 재판부의 「주2회 공판 강행」 때
문에 비롯된 것이다. 변호인들은 7월8일 「사퇴의 변」을 통해 「417호 대
법정의 반란」을 감행하면서 그동안 「공판 일정」 문제등을 놓고 재판부에
품고 있던 불만과 불신을 터뜨렸다.
피고인의 변호인인 전상석, 이양우 변호사와 피고인의
한영석 변호사는 『김영일 재판장이 유죄에 대한 예단을 갖고 재판을 진행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쏘았다. 변호인을 떠나는 마당에 이젠 못할 말이
없다는 것처럼 보였다. 변호인단은 특히 김 재판장이 6월27일 17차 공판
에서 12.12 사건 증인으로 나온 윤성민 당시 육참차장에게 한 보충신문
내용은 명백히 유죄 심증을 갖고 있다는 추측을 낳기에 충분하다고 비판
했다. 『정승화 총장 연행을 윤성민 차장에게 보고한 사람이 합수
본부장이 아니라 합수부의 다른 사람 아니냐』는 식의 유도신문을 했다는
것이다.
재판장의 이같은 신문에 대해 피고인 가족들이 공판이 끝난 뒤 변호인
들에게 『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느냐』고 거세게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
졌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5.18 당시 계엄군의 자위권 행사를 「총질」이라
고 표현하는 등 유죄 예단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재판장의 발언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특히 『재판은 참가에 의의가 있는 올림픽이 아니다』며 7월
4일의 국선변호인 선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국선변호인을 선정
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피고인들과 접견 기
회조차 주지 않고 국선변호인에게 증인신문을 하라고 하는 것은 들러리를
내세운 것밖에 더 되느냐는 것이다. 변호인들은 법정에서 『더 이상 들러
리가 될 수없다』 『사법부의 자살 행위』 『세계적 망신거리』등 원색적 용어
까지 동원했다.
물론 김영일 재판장은 이들의 주장에 대해 『증인신문 내용을 효과적으
로 정리하기 위해 몇가지 보충신문을 벌인 것일 뿐, 예단이란 있을 수 없
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사실 재판 초기부터 법조계에서는 이번 재판이 모양새있게 끝낼 수 있
으리라 예상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명분이나 세력 면에서 피고인
과 변호인들로서는 진작부터 「불리한 세싸움」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마저 엉망으로 만든다』는 비난을 사지 않기 위해선지, 변
호인단은 그동안 나름대로 재판에 충실히 임해왔다. 이나 재판부도
재판이 파국에 이르는 사태를 막기 위해 노심초사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노씨측 변호인단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20차 공판에서 「최
후의 카드」를 꺼내버렸다. 당초 법조계 주변에선 이들이 단계적으로 투쟁
강도를 높여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재판부가 계속 「주2회 공판」
을 강행할 경우, 먼저 일부 변호인이 사임한 뒤, 「변론권 침해」를 이유로
재판부기피신청을 내고 이마저 기각될 경우, 집단 사임이라는 절차를 밟
지 않겠느냐는게 중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노 변호인단이 전원 사퇴라는 예상보다 빠른
「쿠데타」를 감행한 것은 더 이상 재판에 참가해봐야 명분도 실익도 없다
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인 듯하다. 현재 진행되고 잇는 재판대로라면
의 뜻대로 판결이 내려질 수 밖에 없다는 자체 분석에 따라 그렇다면 주
어지는 판결을 고분고분 수용하기 보다는 이에 반발함으로써 「정치재판」
으로 몰고가 판결의 권위와 정당성에 흠결을 내려는 전략을 택한 것 같다
는 것이다.
실제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이미 대부분 심리가 끝난 상태이다.
12.12와 5.18 두 사건에 대해 과 변호인 반대신문은 모두 마쳤고
12.12사건 증인신문도 거의 종료된 상태이다. 이제 남은 것은 대부분
5.18 사건 증인들에 대한 신문뿐이다. 12.12 군사반란과 달리 5.17,
5.18 사건에 대해서는 전·노씨도 광주 피해자들의 정서 등을 고려, 가
급적 발언을 꺼려왔던 게 사실이다. 떠들면 떠들수록 손해라는 판단을 진
작부터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 일부 석방 맞춰 「정치재판」 공세 벌일듯 ///.
도 「전략적 쿠데타」라는 분석에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 하다. 변
호인들이 이미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은 대부분 했기 때문에 「미련없이」
법정을 뛰쳐나갈 수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앞으로 장외에서 「정
치재판」공방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일단 핵심피고인인 전-노씨측 변호인 사임에 따라 1심 재판 일정은 큰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노씨는 당장 『앞으로 국선
변호인 아래서는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며 출정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피고인에게는 원칙적으로 「출정 거부권」이 없다. 때문에
피고인이 법정에 나오지 않겠다고 버티면 구치소의 교도관들이 강제로 끌
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인 전·노씨를 법정에 끌어내기 위해
교도관들이 「물리력」까지 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교도 행정을 맡고 있는 법무부와 재판부 모두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설사 전·노씨를 억지로 피고인석에 앉혀 놓는다 하더라
도 이들이 묵비권을 행사하며 신문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이번 재판의 정당성도 크게 훼
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피고인들중 「중도 석방자」 가 앞으로 속출하는 것도 변수로 꼽힌다.
전씨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안현태 전청와대경호실장,
성용욱 전국세청장은 7월9일 석방됐다. 12.12 군사반란 혐의로만 구속된
유학성, 황영시, 이학봉 피고인도 7월17일이면 구속 기간이 만료돼 풀려
난다. 피고인들의 석방과 함께 전·노씨측 변호인들은 「정치 재판」 시비
를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5∼6공 시절, 학생·노동자 등 시국사건 재판의 피고인들이 법정
투쟁의 「단골메뉴」로 썼던 게 바로 「출정 거부」와 「묵비권 행사」였다. 집
권 기간 내내 자신들을 괴롭혔던 시국사범들의 「법정 투쟁 수단」이 이제
는 전·노씨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 활용되기에 이른 상황인 것이다.
한택근 변호사는 『전·노씨가 피고인으로서 법률상 권리를 행사하는
것까지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격세지감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