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 한.중.일 3국에서 그 어느때 보다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
운데 북한에서의 바둑 인구와 바둑실력이 어느정도인지에도 관심이 모아
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서 북한에서도 바둑은 인기 스포츠의 하나이다.

기력 역시 상당한수준에 올라 있고 향상속도도 꽤나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바둑의 현주소는 최근 일본에서 개최된 제18회 세계아마추어바
둑선수권전에서 부분적이나마 확인됐다.

나가노현 오마치시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 북한대표로 출전한 최명
선군(13)은 종합전적 5승 3패로 7위를 차지했다.

최 군의 성적은 북한바둑의 잠재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
여준 예로 평가됐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바둑이 공식스포츠로 인정받은 것이 불과 7년전
이기 때문이다.

최 군은 이번 대회에서 남한대표인 이용만 6단과도 대국해 접전끝
에 5집반으로 석패하는 등 상당한 저력을 과시했다.

북한바둑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92년때부터이다.

북한바둑의 대들보격인 문영삼 군(17)이 그해 세계아마추어바둑선
수권대회에 나와 4승 4패로 15위를 차지했다.

문 군은 이듬해에도 출전해 6승 2패를 기록하면서 6위에 올라 세
계의 주목을 받았다.

여류 기사의 실력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92년 세계아마여자바둑선수권대회에 최연소로 출전한 최은아 양
(11)은 당시 7살의 어린 나이로 당당히 8위를 차지해 대회관계자들을 깜
짝 놀라게 했다.

최 양은 그때 윤영선 아마국수(현재 프로초단)와 남북간 첫 반상대
결을 벌여 아깝게 패한 바 있다.

북한이 바둑을 공식 스포츠로 인정한 것은 지난 '89년이다.

북한당국은 그해 8월 국가체육워원회 산하에 바둑협회를 결성해
프로레슬러 역도산의 둘째 사위인 박명철(현 국가체육위원장)을 초대 회
장으로 앉혔다.

바둑을 고유 민속놀이로 인정한 북한당국은 이후 두뇌 스포츠의 하
나인 바둑을 적극 권장해 그 일환으로 전국바둑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
다.

그런가 하면 '91년 5월에는 국제바둑연맹에 가입해 세계대회에 출
전할 수 있는 길을 텄고, 2년 전부터는 전국소년바둑대회를 창설해 유망
주발굴에 나서고 있다.

최명선 군과 문영삼 군, 최은아 양은 이같은 북한당국의 적극적인
배려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북한바둑의 최고수는 허이 5단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전 관서기원 소속으로20여년 전 북송된 허 5단은 북한 유일
의 프로기사이자 최고 지도사범인 셈이다.

그러나 '90년대 초반까지의 활동이 확인된 그가 지금도 바둑지도자
로 활약하고 있는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북한의 바둑인구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바둑협회결성 당시5천여명의 애호가가 이미 있었고 '90년대
들어서는 1만여명으로 크게 늘었다는 사실만이 세계대회 등을 통해 확인
되고 있을뿐이다.

북한은 '90년 결성된 조총련계의 재일조선인바둑협회와 교류를 갖
고 있다.

구쾌만 북한바둑협회 명예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는 이 단체는 남북
한 바둑교류의 가교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참고로 남북한 바둑은 용어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화점을 북에서는 별이라고 하고 고목은 웃별, 소목은 아랫별이라
고 부른다.

또 환격은 자충잡기, 후절수는 되잡기, 공배는 헛자리라고 하고
포도송이는 호떡, 바꿔치기는 엇바꾸기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