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열린 12.12와 5.18사건 20차 공판은 - 두 전직
대통령의 변호인단 집단 사퇴와 두 피고인의 출정거부 등으로 파행을
거듭했다. 오후 들어서는 전-노씨가 출정을 거부하자 다른 피고인들만
이 참석한 가운데 예정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김영일재판장은 전-노
씨를 이날 재판에서 분리신문키로 했다.
○…오전 10시15분쯤 김영일재판장이 양병호 전대법원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을 지시하려는 순간, 전씨 변호인인 전상석변호사가 일어섰다.
『금년 7월4일 재판부는 국선변호인을 선임해 재판을 진행했는데
재판부가 국선변호인 제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고 시작된 전변호사의 「사임의 변」은 10여분간 계속됐다. 전변호사는
『당시 국선변호인 2명은 방대한 이 사건기록은 물론 공소장조차 읽어보
지 않고 피고인 접견도 하지 않은 채 법정에 나와 아무런 반대신문도
하지않았습니다. 이런 변호사들은 징계받아 마땅합니다』라고 재판부의
결정에 비난을 퍼부어댔다.
그는 『재판부가 이처럼 편견을 갖고 정해진 어떤 일정대로만 차질
없이 재판을 진행하려는 것은 사법부의 자살행위이며 나라의 망신을 만
천하에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희생양이 될지도 모르는 늙은 피
고인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심정이 무겁기만 합니다』고 말한 뒤 엉
거주춤 서 있다가 자리에 앉았다.
○…이어 이양우변호사가 준비한 「사퇴의 변」이란 6쪽짜리 문건을
변호인석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읽어나갔다.
이변호사는 『세칭 12.12와 5.18사건은 작년 11월 대통령
의 「역사 바로세우기」 선언에 따라 소급입법이라는 위헌적 방법으로 공
소가 제기됐다』고 전제한 뒤 나름대로 분석한 「재판부의 유죄심증과 진
실외면 증거들」을 조목조목 제시했다.
이변호사는 『결론적으로 재판장은 이미 유죄심증을 갖고 형식적
재판절차만 밟으려 함으로써 (변호인들은) 기존의 정치논리를 법적으로
추인하는 「법정의 들러리」로 입회하는 것같은 회의마저 든다』고 주장했
다.
두 변호사의 발언내용이 「1심변론 포기선언」으로 귀결되자 굳은
표정의 김재판장은 피고인을 변호인으로 잘못 호칭하는 등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피고인석의 전씨는 예견했다는 듯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였다.
이변호사는 사퇴의 변을 다 읽은 뒤 피고인석의 전씨를 향해 인사
하면서 『피고인과 재판부, 모두에 대해 미안하다』며 일어서자 전상
석, 석진강변호사 등 법정안에 있던 전씨측 변호사 3명이 따라서 퇴정
했다.
이들 3명은 취재기자 30여명에 둘러싸인 채 「언제 사퇴키로 했나」
「실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기자실로 가자』며 기자회견을 자
청했다.
변호인들은 『올림픽은 참가에 의의가 있지만 변호인들은 충실한
변론에 있다』『들러리에만 의의가 있는 재판에 더이상 응하지 않겠다』는
말을 누차 강조했다.
○…전씨 변호인들의 원색적 용어사용에 이은 집단퇴정으로 인한
술렁거림이 잠시 이어진 뒤 이번엔 노씨 변호인 한영석 변호사가 일어
났다.
한변호사는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세인트 헬레나에서 죽은 이후
영웅대접을 받았고 명치유신때 반란을 일으켰다가 자결한 사이코 다카
모리도 애국자로 추앙받는데 이번 사건도 후세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며
사임의사를 밝힌 뒤 12층 기자실로 올라왔다. 한변호사도 『재판이 요식
행위로 전락했는데 무슨 변론이 필요한가. 대통령과 가족들도 모두 사
임에 동의했다』며 5분여동안 간단히 입장을 밝힌 뒤 서둘러 떠났다.
그는 대법정 출입구까지 따라오는 기자들을 향해 『자꾸 변호인단
이라 하지 말라. 저쪽(전씨측)과 나는 독자적으로 움직이는데 이번엔
우연히 일치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변호사는 휴정후 2층 검색대 앞으로 나온 전씨의 비서관
민정기씨로부터 『잘 하셨습니다. 속이 후련합니다』는 말을 듣자 『재판
부가 악수를 둔 거지 뭐』라고 대답한 뒤 법원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