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천국」 미국에선 요즘 「악성 소비자」들의 횡포에 기업들이 아우
성을 치고 있다. 영수증 없이도 사간 물건을 아무때나 조건 없이 환불 또
는 교환해주는 관행을 악용, 물건을 실컷 쓴 뒤 반품하는 사기성 반품 피
해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화점과 상점의 고객 서비스 데스크에는 물건을 반품하려는 사
람들로 줄이 끊이질 않고 있다. 아예 반품 창구 직원들을 크게 늘려 반품
러시에 대비해야 할 정도다. 창구를 두 개로 만들어 한 쪽은 영수증이 있
는 고객용, 다른 한 쪽은 영수증이 없는 고객용으로 구분해놓고 밀려오는
고객행렬을 맞이하기까지 한다. 업소에서는 물건을 반품받을 때 손님들에
게 여간해서 이유를 묻지 않는다. 기껏 물어야 『물건에 흠이 있나요』라고
할 정도다. 그야말로 미국 소비자들만이 누려온 특권이었다.
//// 구매 아닌 「빌려쓰기」… 연간 피해 10억달러 ///.
미 전역에서 소매 업체들이 소비자 횡포로 입는 피해액 중 「순수 사기
성 반품」 피해액은 10억 달러(약 8천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반품되는 제
품은 속옷에서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품목이다.
업소에 따라 반품과 교환을 해주는 기준과 조건은 물론 다르다. 짧게는
며칠에서부터 제한 기간도 없이 샀던 물건을 반환할 수가 있다. 대개 전
국 체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규모가 큰 업체일수록 반품이나 교환 조건은
관대해진다. 굳이 환불이나 교환을 인색하게 해주었다가는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써보고 하자가 있거나 용도에 맞지 않으
면 언제든지 반품하라』는 식의 바이어 위주 마켓(Buyer's Market)의 특성
그대로다.
그러나 사기성 반품을 증명하거나 법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 대다수 업
체는 그야말로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전자제품 업소들은
고객들이 휴가 여행을 떠날 때 레이더 디텍터(경찰의 속도 적발 감지기)
와 비디오카메라를 구입했다가 휴가가 끝난 뒤 재빠르게 반품한다며 울상
짓는다. TV나 VCR CD 붐박스등 거의 모든 가전제품도 마찬가지. 파티에서
입을 이브닝웨어 같은 고급 의상들도 「빌려쓰기」 대상에서 빠질 수 없다.
심지어 웨딩드레스까지도 결혼식을 치르자마자 『못 입겠다』며 오리발을
내미는 경우가 적지않다. 크리스마스때나 신년 연휴가 지나면 고급 의상
을 취급하는 업소는 반품 고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가구 업소도 여름철
만 지나면 돌아온 야외용 가구들이 줄을 잇는다. 얌체 소비자들이 여름동
안 잘 쓰고는 날씨가 쌀쌀해지면 반품을 일삼기 때문이다. 반품 양상도
지역 특성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여름 한철 짧은 더위가 오는 뉴욕은 더
위 시작과 함께 에어컨이 썰물처럼 팔려 나갔다가 더위가 끝날 무렵이면
적지않은 수가 다시 밀물처럼 되몰려온다.
어떤 소비자들은 바겐세일 때 할인 가격으로 구입한 물건을 들고와서는
정상 가격으로 돈을 되돌려받아가기도 한다. 영수증이 없는 고객들에게는
업소에서 컴퓨터에 나오는 현재 가격대로 돌려주기 때문이다. 대학촌 인
기품목인 컴퓨터는 학기 중 팔려나가 학기말 돌어오기 시작한다. 학생들
이 시험이 시작될 무렵 랩탑 컴퓨터를 구입해 쓰다가 학기말 과제와 재택
시험(Take home test)을 끝내고 반품하는 것이다. 이때 돌아오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에는 여지없이 학기말 과제물과 재택 시험 답안 내용이 들어있
다. 학생들의 얌체짓에 익숙해진 한 전자 업소는 최근 「컴퓨터 빌려주지
않는 법」을 터득했다. 그것은 반품 시한을 닷새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영리한 학생일지라도 5일 이내에는 기말 과제를 모두 끝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고육책이었다.
//// 중고품 사다가 "새것 내놔라" 노골적 수법도 ///.
웃지못할 일도 많다. 어느 업소에서는 5백 달러짜리 비디오카메라를 사
갔던 고객이 한 주일 뒤 환불해간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고객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돌아갔다. 여행 가서 가족끼리 놀이하는 장면을 찍은 테
이프를 카메라 안에 남겨놓았던 것이다. 이런 일은 가전제품 업소마다 심
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물건 구입·반품을 되풀이하는 방법으로 돈안들이고 「왕보다 나은 고객」
생활을 즐긴 경우도 있다. 인디애나주에 사는 그래그 멕퍼슨은 최근 TV토
크쇼 도나휴에 출연해 「과학적 소비생활」에 대해 일장훈시를 늘어놓았다.
그는 침실 장식이 싫증날 때쯤이면 침실 가구를 교환하거나 환불받는 방
법으로 그동안 세 차례나 돈 안들이고 침실 분위기를 바꾸어왔다고 말했
다. 길게는 1년 넘게 쓴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은 당연한
소비자 권리』라고 큰소리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TV출연 후 전국 소
매연합회(NRF)측으로부터 지탄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동안 의도적으로 외
면해온 소비자반품 횡포를 본격 논의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아주 노골적인 반품 사기도 발각되고 있다. 벼룩시장이나 고물상 같은
데서 거저 얻다시피 구한 중고 하이킹화나 캠핑 장비를 들고와 돈으로 내
달라거나 새 것으로 바꿔달라는 것이다. 이런 일은 아직 흔하지는 않지만
최근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여서 업소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럼에
도 사기반품에 대한 업소들의 대응이 본격화하지 않고 있는 것은 업소 대
부분이 제대로 밝히기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역효과가 더 클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이다.
반품 사기 주요 대상은 고객들에게 후하기로 소문난 대형 백화점 체인
이나 전국 체인망 점포, 예를 들면 , K마트, 타깃 등이다. 이중
「가장 관대한 렌트 센터」라고 업소와 고객 모두 공인하고 있는 미국 최대
백화점 체인 조차도 사기성 반품 피해 정도를 밝히지 않아왔다. 그
러나 참는데도 한계가 있는 법. 최근 들어 업체들은 사기성 반품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자 자구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는 전자 제품
이나 잔디 깎는 기계 등 일부 품목에 한해서는 90일 이내에 반품해야 하
며이 때는 반드시 영수증을 지참토록 했다. 북동부 지역에 52개 매장이
있는 가전제품 업체 「노바디 비츠 더 위즈」(Nobody Beats the Wiz)도 특
별반환 조건을 내걸었다. 하자가 없는 한 에어컨은 반환받지 않으며 모든
물건은 7일 안에 반품해야 한다고 정해버렸다. 고객 지상주의 「덫」에 걸
려 무조건 반품을 허용해왔던 관행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소매업체도 반환 사기에 실질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본격화 되지 못하고 있다. 반품기간을 구입 후 최소 30일에서 90일까지로
한정하고 있는 정도이다. 백화점 체인들도 거의가 아직까지는 「언제 어떤
이유에서라도 OK」라는 반품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 미국식 상거래 행위가 부정적 결과만을 낳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 지상주의 사회에서는 「한번 팔고 나면 그만」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거래 관행은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품질 개선과 유통 거래 질서를 보장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업체들 역시 반품 제도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성공한 소매 업체는 대부분 철저한 고객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그런 매력 때문에 고객 사랑을 받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역시 의도적인 반품을 전제로 제품을 사는 고객보다는순수한 고객이 훨씬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귀용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