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주역인 강수진」이 「지젤」 전막에 출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본인도 언젠가는 이 역을 맡고싶어 했다. 그동안 강수
진이 맡은 역들은 「로미오와 줄리엣」(94년 고국 무대)에서 줄리엣역,
「오네긴」의 타티아나, 「마타하리」에서 마타하리 역 등이었고, 킬리얀 안
무의 「구름」은 소품이었다.
강수진이 맡았던 역들은 「물가의 수초」같은 지젤 역과는 차이가 나는
극성이 강한 주인공들이었다. 그러나 6월26일 「지젤」을 보고, 강수진이
재창조한 지젤은 가령 「지젤」 역에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혜숙
과는 또다른 개성을 관객들에게 심어주었다.
「지젤」하면 흔히 1막보다 밤의 정령으로 환생해 왕자와 재회하는 2막
에 비중을 더둔다. 강수진이 출연한 「지젤」은 그런 비중의 중심을 수정했
다. 그것은 1막, 왕자의 신분이 노출되자 미쳐가는 광란의 장면에서 드러
났다. 지젤이 끝내 자결하기 전 광란의 연기와 춤을 강수진 만큼 해낸 국
내 발레리나들을 만나기는 쉽지않다.
윌리의 여왕 묵인하에 연인들이 재회해 그랑 파 드 뒤를 춤추는 2막
무덤가 장면 역시 「로미오와 줄리엣」 「구름」 등에서 호흡을 맞췄던 이반
카발라리와의 균형이 돋보였다.
이번 「지젤」 공연을 보면서 흐뭇했던 점은 세가지였는데 이미 스타의
위치를 굳힌 강수진이 「지젤」 역을 맡으면서 초연인 만큼 욕심을 자제하
고, 편안한 마음으로 춤추겠다는 겸손함과, 「지젤」을 춤추는 선의의 경쟁
자이면서도 선화예고의 선배인 문훈숙 발레단장이 후배를 위해
고국 무대에 초청한 점, 그리고 발레단으로서는 84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작품의 주역을 선-후배가 맡은 경우였다. 우리나라 발레의 그동
안의 성장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젤」 2막은 안개서린 음산한 무덤가에서 로맨틱 튀튀를 입은 윌리들
이 출몰하는 「밤의 시」에 해당되는데 시몬 파스투크의 무대미술이 압권이
었고, 십자가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강수진의 등장 장면은 인상적이었
다.
1막 마을 처녀의 순진한 이미지(문훈숙보다 강수진은 그점에서 선이
굵다)가 2막에서 싸늘하고 차디찬 정령으로 바뀔 때의 성격창조가 9년간
해외무대에서 활동한 강수진의 저력을 입증했으며, 리드 윌리로 나온 정
유진과 나오미 기타무라도 숲에서 남자를 만나면 미치도록 춤추게한 뒤
기절시킨다는 생령으로 손색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