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9일로 임기를 마치고 퇴역하는 게리 럭(59·육군 대장) 제22
대 주한미군사령관의 트레이드 마크는 「같이 갑시다」(Let's go together)
이다.
럭 사령관은 부임 3년 내내 연설 말미나 사석에서 항상 한국인들을
향해 서툰 한국어로 이 말을 즐겨 사용하곤 했다.
이 말은 달라진 주한미군사령관의 위상을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거의 점령군사령관 수준으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던 시절(1945년∼60년)
에서 「빅 브라더(Big Brother)」로서 힘을 발휘한 60∼70년대, 사실상 한
국과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벌이기 시작한 80년대를 거치면서 그 위
상은 조금씩 하향조정돼왔다. 그리고 이제는 주한미군사령관 스스로 한국
인 친구들에게 「동반자 관계」임을 강조해야할 만큼 변화한 것이다.
/// 감투, 92년 이전 7개에서 현재는 4개 ///.
럭 사령관은 지난 85년부터 86년12월까지 동두천 2사단장을
역임한 지한파다. 당시 럭 사단장은 동두천 인근 포장마차도 찾아가 주민
들과 술도 마시고 꽃도 사주며 한국인들을 이해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동
두천 주민들도 격의없이 어울리는 미국 장군을 호감있게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4성장군으로 지난 93년 6월 주한미군사령관직에 부임한 뒤에는 공
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한국인과 잘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2사단장 시절엔 인근에 위치한 이병태 한국군 26사단장(전국방부장관)
을 『내 친구(My Friend)』라고 부르며 격의없이 지냈으나 주한미군사령관
으로서는 우리 국방부나 합참 간부들과 의례적인 관계만을 유지했다는 것
이다. 이같은 변화에 대해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 사
이의 급격한 변화를 논리적(머리)으로는 이해하지만 심리적(마음)으로는
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과거 모습을 잘 아는 럭
사령관으로서는 점점 요구가 많아지고 거세지는 요즘 한국의 모습에 괴리
를 느끼고 수세적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해석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쓰고 있는 감투는 네 가지나 된다. 본래의 주한미
군사령관 외에 한미연합사령관, 군사령관, 주한미군 선임장교가 그것
이다. 그러나 평시작전권을 넘겨준 92년 이전까지만 해도 군지상군
사령관, 미8군사령관, 한미연합사 지상구성군사령관 등 직함이 3개나 더
있어 모두 7개나 됐다. 사령관의 권한과 위상을 상징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다.
하지중장이 주둔군사령관의 단초를 열었다가 50년 발발과 함
께 재주둔 역사가 시작된 주한미군은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인수받
은 국군 작전통제권 등 군사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으로도 막
강한 영향력을 한국사회에서 발휘했었다. 초대 군사령관 자격이었던
맥아더는 당시 에서 유학중이던 정일권씨를 급거 불러 이 대통령의
동의를 구하는 형식을 빌어 육해공군 총사령관으로 전격 임명하기까지 했
다. 이후 휴전협정조인 반공포로석방 한미상호방호조약체결(53년10월)
미병력 대거철수 등의 변모를 거치면서 주한미군사령관의 영향력은 한풀
꺾이게 된다. 현재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초대 주한미군사령관은 57년7월
동경에 있던 사령부가 서울로 옮겨 주한미군사령부가 신설되면서 부
임한 조지 데커대장을 꼽는다. 데커는 용산 미8군 영내에 골프장을 만들
어 한국에 아마추어 골프를 보급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평화를 「구가(?)」하는 것만 같던 주한미군사령관에 시련을 안
기면서 그 위상을 크게 뒤흔든 사건이 터지고 말았으니 5.16이 바로 그
것. 이 일로 매그루더는 5.16 발생후 1달만에 불명예 퇴진하는 수모를 겪
어야 했다.
이후 68년 1.21 사태, 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군, 79
년 12.12 사태를 겪으면서 그 영향력은 서서히 약화됐다. 상대적으로 미
군에 의존하던 한국군의 위상이 점차 자주적으로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신구부주도의 12.12사태와 5.18 조치를 사후 또는 사전에 묵인
하는 자세를 취한 나머지 주한미군은 한국민의 반미감정에 불을 끼얹었고
아직까지도 도덕성 논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당시 사령관
을 지낸 위컴은 격동기의 사령관답게 「들쥐발언」사건을 야기, 여론을 들
끓게 했다. 지금까지 「용산」을 거쳐간 주한미군사령관은 데커대장서부터
게리 럭까지 모두 16명. 평균재임기간은 2년5개월. 3년2개월의 스틸웰이
최장수 사령관이다. 최근 들어 13대 윌리엄 립시 이후에는 만3년의 재임
기간을 모두 채웠다.
만일 맥아더까지 올라간다면 역대 사령관은 곧 부임할 틸럴리사령관까
지 총 23명에 이른다.
//// 강-온 엇갈려온 사령관들의 스타일 ////.
주한미군사령관의 위상은 한국의 경제력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70년
대 중반 미국의 무상 군수원조 「졸업」과 86년의 FMS(대외군사판매)라는
외상지원 시대의 마감, 그리고 89년부터 시작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등
달라진 한미양국간 지원체제는 음으로 양으로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와 동시에 89년 용산 골프장의 반환에 이어 94년 국군의 평시작전권이
우리나라에 이양됐다. 주한미군사령부 공보관 존 라이츠 대령은 『67년
한국내 미군부지는 4억3천만평이었는데 지금은 8천만평뿐』이라고 했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은 지휘 스타일이 상반되는 인사들이 교대로 부
임되곤 했다. 예컨대 전임자가 강성 인물이면 후임자는 보통 온건형인물
이라고 한다. 현임 게리 럭 사령관이 지한파요, 부하들에게 권한을 분산
위임하는 통솔형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비해 존 틸럴리(55) 차기 사령관
은 한국을 전혀 모르는 비지한파요, 업무 장악력이 강한 실무형이란 평
가를 받는다.
또한 럭 사령관이 워싱턴의 본부 근무경력이 적은 순수 야전 출신으
로 비정치적 인물인데 비해 틸럴리 차기 사령관은 순수 야전 출신이긴
하지만 92년부터 줄곧 국방부와 육군성의 정책·기획부서에서 근무해 워
싱턴의 풍향을 잘아는 정치적 감각의 소유자란 평을 듣는다. 주한미군사
존 라이츠 대령은 『예컨대 럭 사령관은 미국에서 고위인사가 내한해 주
말에 에스코트를 부탁하면 거절할 정도로 부하를 먼저 생각하는 순수 야
전지휘관형』이라고 말했다.
럭 사령관의 전임자인 로버트 리스카시 사령관의 경우를 보면 한국을
잘모르는 비지한 파에다가 일을 위해선 쉴새없이 참모와 부하를 부리는
군림형이었다고 한다. 또 매우 개성이 강해 간혹 한국측 인사와 마찰을
빚었으며, 야전 출신이 아닌 정책통이어서 여러모로 럭 사령관과 대비됐
다고 한다.
과거에는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의 국익에 얼마나 부응하느냐는 문제
를 놓고 한국측에서 논의가 적지 않았다. 소위 친한파냐 아니냐는 평가
에 따른 논쟁이었다. 한미연합사에 근무했던 한 영관급 장교는 『이제 그
같은 논쟁은 더이상 얘기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잘라말했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예나지금이나 철저히 미국 국익에 충실할 뿐이다. 다만 본인의
성격이나 행동양식이 한국적 관점에서 호감을 주느냐 아니냐는 지엽적
문제를 놓고 친한파니 뭐니 구분했을 뿐이다. 물론 우리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던 시절에 일부 미군사령관들은 그야말로 「큰 형」같이 여유있
는 처지에서 한국에 배려를 쏟은 적도 있었긴 하지만 지금은 아다시피
서로 「기브 앤 테이크」를 하는 동반자 관계다.』.
럭 사령관은 지난 94년 12월 한국군에게 평시작전권을 넘겨준 당사자
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럭 사령관은 친한파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럭
사령관은 평시작전권을 이양해주면서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코다」(CODA)
라는 장치를 슬며시 만들어 놓았다. 한-미 양국군 작전계획 수립이나 연
합훈련 등 일부사항을 평시위기관리체제의 일환으로 미군측이 갖는다는
명분하에 한 국군의 평시작전권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되찾아놓은 것
이다. 또한 과거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국군 2군사령부 지역에
대한 「후방지역조정권」도 확보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럭 사령관은 철저
히 미국의 국익을 중시하는 국가주의자로도 비쳐진다.
--- 「위험한」 북한 고려, 요직 경력·감각 높이산듯 ---.
합참의 한 고위간부는 『럭 사령관이나 전임 리스카스 사령관의 무시
할 수없는 업적은 두사람 다 한국 재임 기간 주한미군을 비롯, 한-미 연
합전력을 크게 향상시킨 점』이라고 말했다. 소위 「5027계획」이라고 불리
는 전력증강사업을 통해 미국 최신무기 등 도입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
이다.
존 틸럴리 차기 사령관은 베트남전과 걸프전에 참가했던 다양한 전투
경험의 소유자이면서 주로 미국과 독일 등을 오가며 근무한 비아시아통
장군이다. 국방부에선 틸럴리 사령관이 재임할 향후 3년간이 50년 넘게
끌고온 남-북 군사적 대치 상황의 「결정적 국면」에 접어드는 시기로 내
다보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측이 이 어려운 시기에 이미 대장 보직을 두번
이나 거친 비중있는 틸럴리 대장을 주한미군사령관으로 임명한 배경에는
그의 다양한 전투경험, 기갑-작전에 능한 야전 지휘관 자질, 협상과 조
정이 중요시되는 유럽 근무 경력, 육군참모차장 등 군부 핵심 요직에서
근무한 경력에서 나오는 대국적 판단과 정치적 감각 등을 복합적으로 고
려한 선택인 것같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