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베이징) 주재 외국기자들에게 지난 6월17일은 길고긴 하루였다.

북경시간으로 이날 낮 12시까지 중미적재산권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
면, 냉전이 끝난 후 최초로 중미 무역전쟁이 시작될 판이었다.

이날 오전 8시부터 북경중심가 장안(창안) 대로변 대외무역경제합작
부 청사 정문 앞에 외국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중국 당국은 기자들에게
대기실조차 마련해주지 않았다. 긴 기다림이 시작됐다.

낮 12시. 워싱턴 시각으로 17일 0시. 무역전쟁 발동 예고시한이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외국기자들이 서성거리는 청사
정문 앞에는 30도가 넘는 더위에 강렬한 햇볕만 내리쬐고 있을 뿐이었다.
12시40분. 샬린 바셰프스키 (통상대표부) 대리대표를 포함한 미국측
대표들이 승용차를 타고 청사를 빠져나가버렸다.

오후 5시. 석광생(스광성) 대외경제무역부 부부장이 약속했던 브리핑
도 열리지 않았다.

『타결인가 깨진 것인가.』 청사 정문 앞의 외국기자들은 여전히 혼란
에 빠져 있었다.

오후 7시. 관영 중국중앙TV(CCTV)는 『회담이 진행중』이라는 뉴스와
함께 『8시에 중요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코멘트를 덧붙였다. 이 뉴스가
방영된 직후에야 북경주재 미대사관은 『밤 10시 바셰프스키가 기자회견
을 미공보원에서 가질 것』이라고 연락해왔다.

결국 밤8시 CCTV는 『마침내 합의에 도달』 뉴스를 내보냈다. 전례가
없이 신속한 보도 태도였다.

밤 10시 기자회견에 나선 바셰프스키는 목이 쉬어 있었다. 그녀는
『이람청(리란칭)부총리와 만난 후 강택민(장쩌민)국가주석도 만났으며…
이만남에서 중국에 대한 우리의 「개입(계속접촉)」전략이 옳다는 것을…
불법 CD공장 15개를 문닫게 했고…』라며 「미국의 승리」를 누누이 강조했
지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중국은 이미 바셰프스키를 이처럼 피곤하게 만들 정도로 경제적으로
는 당당한 미국의 적수가 됐다.

북경에서 막바지협상이 벌어진 지난 3일동안 세계가 이 협상보다 더
주목한 것은 러시아 대통령 선거였다. 이 기간동안 중국관영 TV의 정규
뉴스는 러시아 대선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보도하지 않았다. 1차 선거 개
표가 끝난 18일 아침 TV뉴스들도 『이스라엘의 네탄야후가…, 미국과 프
랑스는 핵협력을 강화하기로…, 일본과 미국은 반도체협상에서…』는 국
제뉴스만을 내보냈다.

러시아 연방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러시
아의 선거는 아무래도 「중국공산당의 영도」에 부담을 주는 뉴스였음에
틀림없다. 【박승준·북경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