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천안문사태' 7주년을 맞은 4일 북경은 희생자들에 대한 추도
가 극소수의 가정에서 조용히 이뤄지고 역사의 현장 천안문 광장에선 불
과 한 여성만이 헌화하려다 경찰에 끌려가는등 겉으론 별다른 소요없이
조용한 모습이었다.

이날 아침 천안문 광장은 평상시 처럼 내외 관광객들로 붐볐다.

중무장한 인민복 차림의 공안요원이 광장에서 순찰에 임했으나 예
년과는 달리 외국기자들의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을 금하지는 않았다.

이날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공중 기념집회를 열지 않았다.

1명의 젊은 여성만이 광장 중앙의 인민 영웅 기념탑쪽으로 한다발
의 꽃을 가지고 가다 공안요원들에 의해 강제로 광장 바깥으로 끌려나가
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여성은 경찰들이 꽃다발을 낚아 채면서 자신을 강제로 오토바이
뒷자석에 태우려하자 저항했으나 공안요원은 그녀를 오토바이에 태우자
마자 광장을 벗어났다.

그녀를 연행해간 자리엔 노란 국화 잎만이 흩어져 있었다.

이같은 시위를 예상, 경찰은 이날 신분증을 확인하고 시위를 벌일
것으로 보이는 자들에 대해서는 검문검색을 벌였다.

앞서 이날 아침 한 젊은 남자가 경찰에 의해 광장 진입이 허락되지
않았으나 귀가 조치됐다.

천안문사태로 당시 17세였던 아들을 잃었던 퇴직 교수 딩 질린씨
(여)는 집에서 조용히 아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딩씨 부부는 촛불과 향을 피워놓고 죽은 아들을 위해 닭고기, 생선,
새우등의 요리를 장만했다.

딩씨 등 30명은 중국 당국에 당시 진압 기록을 요구하는 소명서를
제출했으나 작년과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다고 딩씨는 밝
혔다. 시위나 조문 등의 단체 행동은 중국 특히 찬안문 광장에서는 금
지돼 있다. 지난 89년 천안문사태 후 세워진 기념탑 기단에 새겨진 경
고문에는 탑을 건드리거나 헌화행위 그리고 사전 허가없는 글자 새김 등
을 금한다고 씌어져 있다.

7년전 천안문에서 시위 학생들은 89년 4월15일 전당지도자 호요방
사망 이후 이대리석 탑에 꽃다발과 화환을 놓으면서 시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