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8시45분. 여의도 신한국당사 입구에 서울3쿠2206호 그랜저
승용차가 들어서자 「도열」해있던 50여명이 일제히 박수로 맞았다. 2002년
월드컵 유치에 성공하고 돌아온 대표 환영식이었다. 총장,
이상득정책위의장, 총무, 김철대변인, 제1-정영훈 제3정조위
원장 등은 15분 전부터 이 대표의 당사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꽃다발이
건네지고, 박수가 쏟아지는 동안 이 대표의 얼굴은 환한 웃음꽃을 피웠다.

이 대표는 이후 고위당직자회의를 주재한 뒤 곧바로 로 향했
다. 대통령에게 주례 당무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오후 2시쯤 당
사로 돌아온 이 대표는 서너시간 후 또 다시 로 올라갔다. 이번에
는 김대통령이 베푸는 월드컵 유치단 환영만찬 행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치위명예위원장인 이 대표, 구평회 유치위원장, 유치위수석
부위원장. 이들 3인의 「유치공신」 환영만찬에는 총리, 외무-
문체부장관-박세일청와대사회복지수석 등이 배석했다.

전날인 2일 오후 김포공항에 이어 이날 두번째 벌어진 당직자들의 이
대표 귀국환영식. 그리고 하루 두차례의 행. 당주변에서는 그를 환
대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또 누구나 『이 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하루하루
몰라보게 달라지는 것 같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또 그를 차
기 대통령후보로 꼽는 인사들도 부쩍 늘어나는 분위기다.

지난달 7일. 그가 대표직에 오른지 한달이 채 안된 상황임을
돌이켜볼 때 놀라운 「변화」다. 특히 여권내에서는 월드컵유치를 통해 특
유의 국제감각-외교력을 과시, 이 대표가 국민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21세
기형 정치지도자의 이미지를 쌓았다는 것이 중평이다.

그만큼 이 대표는 월드컵유치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
다.

93년 대한축구협회장에 당선된 의원이 이해 10월 월드컵 3회
연속 진출을 달성한 아시아 최종 예선전이 끝난 뒤 찾아간 것은
당시 평통수석부의장이었다. 그의 합류로 월드컵유치위 구성은 급
진전, 94년1월 발족을 보게 됐으며, 이 대표는 유치위원장을 맡았다.

이해 통일부총리로 가면서 명예위원장으로 직함을 바꿨지만 지난해 국
무총리 재직때, 지난 5월 대표가 되는 동안 그는 줄곧 「월드컵」
과 함께 있었다. 태극기와 축구공을 그려넣은 2002년 월드컵 로고도 그와
씨의 합작품이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 부회장이 게릴라
식으로 유치위원들을 점령해 나갔다면,월드컵유치를 국민운동으로 발전시
키고, 국제무대에서 얼굴 역할을 한 것은 이 대표였다』고 했다.

총리를 그만둔 뒤인 지난 1월과 4.11 총선 직후 각각 3주일씩 유치외유
에 나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