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제3국'. 최근들어 한국 외무부가 즐겨쓰는 단어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이 말은 북경(베이징)주재 한국대사관이 즐겨쓰게 된
말이다. 외무부가 `동남아 제3국'이라고 하면 주중한국대사관은 `우리
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로 화답'한다.

동남아 제3국이라는 알듯말듯한 단어를 외무부가 사용하기 시작한 것
은 92년 10월의 한중수교이후. 그것도 북한사람들이 중국을 거쳐 한국으
로 망명했을 경우 우리 외무부는 `그가 동남아 제3국을 거쳐 망명해 왔다'
고 발표해 왔다.

이 경우 망명북한인이 대부분 거치는 중국의 우리 대사관은 "우리는
전혀 개입한 일이 없으며,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어느새 관례
로 굳어져 버렸다.

31일 서울에 도착한 북한과학자 정갑렬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씨는 망명사실이 30일 을 통해 보도된 뒤에도 주중한국대
사관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만 거듭 밝혔다.

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그런 사람이 우리
대사관에 온일도 없고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고만 말했다. 이날 오후
외무부는 "북한인 2명이 동남아 제3국에 머물고 있으며 이들의 망명의사
가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아예 공식용어가 되어버린 동남아 제3국이란 말에서 제3국이
란 도대체 어느나라를 가리키는 말일까.

`남북한이 아닌 제3국'이라는 말일까 아니면 중국을 경유하지 않았다
는 점을 강조하려다 보니 `제3국'이란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일까. 동남
아의 한 국가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제3국'이라는 단어를 차용하게
된 것일까.

"남북한과 중국의 삼각관계속에서 잘못 선택된 말일수도 있겠으며,
그속에 우리외교의 고민이 숨어있지 않겠는가".

대사는 그런 말로 이해를 구했다. 망명북한인이 한국으로 인
도되는 과정에서 중국당국의 양해와 개입은 필연적인 일이지만 우리 외교
의 현실은 북한관계를 고려, 중국의 개입사실을 어떤 경우에도 시인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뜻인듯 했다.

왜 많은 북한탈출 망명인들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직접 인도되지 못하
고 굳이 `동남아 제3국'을 거쳐 인도돼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까지 중국의 대북한 선린우호관계와 체면유지를 위해 `동
남아 제3국'이라는 알쏭달쏭한 당국의 발표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려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북한인이 중국을 거쳐 망명해 왔다"는
당당한 발표를 들을 수 있는 것일까.

망명 북한인을 놓고 벌어지는 우리 외교의 `수수께끼'가 답답하기만 하
다.
< 박승준 북경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