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 시작된 성공회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890년 코프(한국명
고요한:1843∼1921)주교에 의해서였다. 1889년 11월 성공회의 최고 지
도자인 벤슨 캔터베리대주교에 의해 초대 한국교구장으로 임명된 코프
주교는 한국선교에 필요한 준비를 한후 1890년 9월 의료선교사인 랜디
스와함께 제물포항구에 도착했다. 이들 두 사람은 서울과 제물포를 오
가며 교회-병원 설립, 영어학교와 영어성서반 운영, 성공회 관련 책자
발간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성공회를 한국사회에 알리기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성공회가 초기에 뿌리를 내린 곳은 경인지역이 아
니라 뜻밖에 였다. 이후 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공회의
성직자와 평신도중 상당수를 배출하면서 한국성공회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에는 한때 성공회 성당이
24개나 있었으며 현재도 12개가 활동중이어서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
적으로 많은 수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의 성공회를 상징하는 성공회 강화성당은 한국성
공회의 첫번째 성지로 꼽힌다. 더구나 이 성당은 「토착화」라는 성공회
의 선교이념을 반영하여 동서양의 건축 양식을 혼합해 지어진 독특한
건물로 종교적 측면뿐 아니라 건축적 관점에서도 뛰어나 가치를 더해
주고 있다.

에 성공회가 전파된 것은 1893년 워너(한국명 왕남도)신부가
섬의 초입인 갑곶에 회당겸 사택을 매입하면서였다. 그러나 이곳에 성
공회를 꽃피운 것은 훗날 한국성공회 제3대 교구장을 역임하게 되는
트롤로프(조마가)신부였다. 트롤로프신부는 1896년 에 부임하여
최초의 한국인 성공회신자인 김희준(마가)에게 영세를 주었고 읍내 중
심지에 땅과 집을 매입해 선교의 거점을 확보했으며 이듬해 보육원을
개설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통해 성공회의 터를 닦았다.

트롤로프신부가 김희준의 도움을 받아 강화읍 관청리에 성공회 강
화성당을 완공한 것은 1900년 11월. 이로부터 성공회 강화성당은 한국
성공회의 「못자리 교회」로 많은 신자와 성직자를 배출했으며 1914년에
는 성당 뒤편에 성직자 양성기관인 성미가엘신학원(의 전신)
이 세워져 중요성을 더하게 됐다. 김희준은 1915년 성미가엘신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된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겉모양은 전통사찰 방식, 내부는 바실리카 양식
을 각각 사용한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그뿐 아니라 건물 전면에는
사찰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주련이 여러개 붙어 있고 성당의 앞쪽에는
한국식 범종과 보리수까지 자리잡고 있어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은 신
기한 느낌을 갖게 된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설립 1백주년을 앞두고
이를 한국성공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념관으로 꾸미는 계획을 추진하
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