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이 나를 버리지 않는한 더 머물것" ***
*** ` 흉내'보다 우리체질 맞는 농구 고집 ***.
스포츠세계는 냉혹하다. 특히 감독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가차없이
내쫓긴다. 한시즌에 서너명이 바뀌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감독
목숨은 곧잘 파리목숨으로 비교된다. 그런 살벌한 승부마당에서 21년간
오직 한자리를 지키며 5백승 달성을 눈 앞에 두고있는 감독이 있다. 고
려대학농구팀 박한감독(51). 한팀을 이끌고 5백승을 돌파하는건 국내
대학부와 실업부를 통틀어 처음있는 일이다. 큰 키(1m92)에 과거 할리우
드 명배우 록 허드슨을 연상케하는 준수한 외모. 그리고 술고래로 잘 알
려진 그가 이처럼 장수하며 대학부 최다승을 기록한 원동력은 뭘까. 스
포츠레저부 박희송부장이 박감독을 만나봤다..
-- 5백승 고지를 눈 앞에 두고 있는데 지금 승수가 정확하게 어떻게 됩
니까.
『10일 현재 4백96승입니다. 앞으로 4승을 더 추가해야 하는데 아마
전국체전때 이 기록을 달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지도자로서는 고려대학이 첫 직장이었나요.
『그렇습니다. 산업은행농구팀에서 현역선수로 활약하다 은퇴를 고려
할때인 75년 봄에 당시 산업은행 총재였고 고려대 교우회장이었던 김원
기 대선배께서 저보고 모교에 가서 후배들을 양성해 보라며 고려대학교
에 추천을 하신 게 계기가 됐지요.』.
-- 처음 고려대를 맡았을 땐 팀성적이 어땠습니까.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우승은 커녕 준우승도 못해 1년후
쫓겨날 지경에 이르렀으니까요.』.
-- 그 위기를 어떻게 넘겼습니까.
『당시 최대어로 꼽혔던 , 임정명을 낚아 재건의 기틀을 만들
어 인정을 받았습니다.』.
-- 21년간 숱한 국가대표를 배출했는데 가장 사랑했던 제자는 누굽니까.
『딱히 1명을 꼽으라면 답변을 하지 않겠습니다.』.
-- 그럼 3,4명만 꼽아보시죠.
『고려대농구팀 전성기를 일궜던 진효준, 황유하, , 임정명 등
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77년부터 2년간 이들 4인조가 주축이 돼 국내
농구 최고기록인 49연승 신화를 만들었으니까요.』.
-- 스카우트가 가장 힘들었던 선수는 누굽니까.
『최근들어선 , 현주엽이었어요. 그 선수들을 데려올 땐 아예
안방에 드러눕다시피해 부모들의 허락을 받았죠.』.
-- 굴지의 실업팀으로부터 감독직제의를 여러차례 받았으면서도 한사코
거절한 이유는 뭡니까.
『김상겸 현 고려대 체육위원장 때문입니다. 그분에게 76년 큰 은혜
(?)를 입었어요. 성적부진으로 해임위기에 몰렸을때 김위원장이 1년만
더 지켜보겠다며 기회를 줬습니다. 당시 저는 32살의 젊은 감독으로 별
생각을 다 할때였죠. 그때 저를 유임시켰던 그분에게 보은한다는 기분으
로 고려대가 필요로 할때까지는 머물러 있겠다는 각오입니다.』.
-- 농구계선 고려대학이나 연세대학감독이 가장 행복한 감독이라고들
합니다. 이런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수선수확보가 쉽고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는 모양인데 실제로는 졸업생과 후원회로부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
고있습니다. 이겨야 본전하는게 제 처지입니다.』.
-- 고려대학농구팀은 연간 팀 유지비가 얼마나 들고 재원은 어떻게 마
련합니까.
『먹는 데 제일 많이 들죠. 그 다음엔 지방전지훈련등때 드는 이동비
고요. 연간 1억5천만원안팎을 씁니다. 고려대농구선수출신들의 모임인
「고대농우회」가 가장 많이 도와주지요.』.
-- 농구와 첫인연을 맺은건 언젭니까.
『인창고등학교 1학년때 였어요. 키가 1년새 17㎝가 크더군요. 특히
여름방학 한달반 사이에 6㎝가 커서 2학기가 시작됐을땐 친구들이 혹시
제 형이아니냐고 묻기도 했어요. 그리고 2학년에 오르니까 체육선생님들
이 농구를 하라고 떠밀어 반강제로 시작했죠.』.
-- 그러면 고교2학년때부터 농구를 한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한데 농구에는 약간의 자질을 타고났던가봐요. 금
세 적응을 해 고려대학 2학년때는 국가대표에 발탁됐으니까요.』.
-- 당시 큰 키가 화제를 모으지는 않았는지요.
『당시 1m90대의 농구선수는 국내에 단 2명뿐이었습니다. 큰 키덕을
많이 봤죠.』.
-- 농구코치로서 평소 철학이 있을텐데요. 좀 소개해주시죠.
『분수에 맞게 사는 겁니다. 최근들어 가 국내TV에 자주
방영되면서 미국식 패턴을 도입하는 팀이 늘고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말
해서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힘과 스피드와 높이가 도저히 그네들을
흉내낼 수 없기 때문이죠. 저는 선수를 알고 작전은 이를 짜 맞추는 선
에서 그칩니다.』.
-- 최근 실업농구가 프로화에 박차를 가하고있습니다. 박감독은 프로화
에 반대하십니까.
『프로화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대찬성입니다. 문제는 국내 여건이 프
로화를 서두르기에는 너무 이르다는거죠.』.
-- 어떤 점들이 그렇지요.
『우선 저변이 너무 협소합니다. 대학팀이 11개밖에 없는 실정인데
10개 실업팀이 프로에 가담하겠다는건 무리입니다. 그러니까 용병수입
얘기가 서슴없이 거론되는거죠. 아무리 프로라지만 국내선수가 아닌 외
국선수들에 의존해 경기를 치르면 관중들이 좋다고 하겠습니까. 미국의
경우 매년 대학에서 배출되는 농구선수가 6천명에 이릅니다. 하지만 NBA
에 진출하는 선수는 많아야 50명선입니다. 그 정도 좁은 문이 돼야 우수
선수가 나오는것 아닙니까.』.
-- 최근 농구가 부쩍 인기를 모으면서 오빠부대들이 꽤 극성을 떨고있
는데요. 고려대학팀은 어떻습니까.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정돕니다. 오후 4시가 넘으면 체육관앞이 장사
진을 이루지요. 개중에는 아예 학업은 포기한양 선수뒤만 따라다니는 학
생도 있습니다. 야박하게 쫓을 수도 없는 일이어서 체육관내에 아예오빠
부대 전용 스탠드를 만들었어요. 밖에서 웅성웅성대지 말고 체육관안에
들어와서 보고싶은대로 보고 가라는 생각에서 였죠. 그러니까 오히려 덜
해지더라구요.』.
-- 스포츠감독들은 나름대로 무슨 미신같은 게 있던데 박감독은 어떻습
니까.
『믿는다기 보다는 기피하는게 몇가지 있지요. 큰 경기를 앞두고는
속내의를 갈아입지 않습니다. 속옷을 갈아입으면 이상하게 예상치 못했
던 결과가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대회기간중엔 중간에 쉬는 날이 있을때
속옷을 갈아입습니다.』.
-- 훤칠한 체격과 준수한 외모로 여자들이 호감을 가질 타입인데, 왜
결혼을 하지않고 계십니까.
『잘 생겼다고 하니 기분이 좋군요. 하지만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괜히 얼굴이 많이 알려져 선도 몇차례 보지 못했죠.』.
-- 소문에는 한때 미스코리아출신과 열애를 했다고들 하던데요.
『사실입니다. 78년 전후해서 그런 일이 있었죠. 그 여자는 지금은
가정과 자녀를 갖고있어서 이름을 밝히기는 곤란합니다.』.
-- 그러면 평생을 독신으로 사실 계획입니까. 불편하지 않습니까.
『네, 지금으로선 결혼은 별 생각이 없습니다. 82세가 되신 어머니와
함께삽니다. 빨래나 식사는 대개 파출부에게 의존하지요.』.
-- 주량이 시쳇말로 「밑 빠진 시루」라고 들었습니다. 적량은 얼마나 됩
니까.
『소주 2병에 양주 1병을 곁들이면 기분이 좋아지지요.』.
-- 술에 얽힌 에피소드가 엄청나게 많던데, 가장 기억에 남는것 한토막
만 소개해주시지요.
『13년전 일입니다. 당시 정재섭, 최철권, 김윤호선수등이 우리팀의
주축을 이뤘을때죠. 4박5일 일정으로 만리포에 여름휴가를 갔는데 선수
들이 술 좀 먹게 해달라고 조르더군요. 내심 괘씸하기도 해 술로 혼을
내준적이 있어요. 4박5일동안을 재우지 않고 술을 먹였죠. 처음 3일정도
는 잘 따라서 홀짝홀짝 마시더니 나흘째가 되니까 전부들 도망가더라구
요.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잠 한숨 안자고 선수들을 일일이 대작했어요.
선수들로부터 나중에 들은 얘긴데 소주 3백50병, 맥주 6백병이었다고 하
더군요.』.
-- 양주는 입을 떼지않은채 1병을 거뜬히 비운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먹어도 뒤탈이 없습니까.
『아직은 전혀 증상이 없습니다. 술이 체질적으로 잘 받는가봐요.』.
-- 여가생활을 어떻게 보내십니까.
『등산을 자주하다 최근에 골프를 배웠는데 무척 재미있는 운동이더
군요. 그래서 골프에 빠져 있습니다.』.
-- 골프실력은 어느정도입니까.
『보기플레이어입니다. 장타는 못됩니다. 드라이버거리는 평균 2백
10m예요.』.
-- 농구감독으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을텐데요.
『농구대잔치 패권을 잡는게 소원입니다. 대표팀 감독도 하고 싶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