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훈-정하상등 처형된 곳...성인 44명 배출 ###.
한국 천주교는 모두 103명의 「성인」을 배출했다. 우리나라는 이질
적인 문화풍토에 천주교가 전파돼 모진 박해를 거치며 성장한 경우로
성인은 모두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이다. 이들은 1984년
5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요한 바오로2세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시성식에서 천주교 최고의 영예인 성인의 자리에 올랐다.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천주교 순교 성지중 가장 많은
성인을 배출한 곳은 서울 서소문에 있는 순교터이다. 이곳에서는 19세
기 초-중반 이른바 「4대 박해」때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됐고 이
들중 44명이 성인이 됐다.
조선시대때 서울에 있던 4개의 작은 문중 하나인 서소문 「소의문」
밖 네거리는 죄인들의 참수형을 집행하던 장소였다. 따라서 1801년 신
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
에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피를 흘리며 순교했다.
서소문밖 네거리에서 사형이 집행된 인물중 한명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인 이승훈이다. 1784년 중국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
와 한국천주교회를 세웠던 그는 1801년 신유박해때 체포돼 정약종, 최
창현등 당시 천주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이곳에서 순교했다. 또 1839년
기해박해때는 정약전의 아들로 천주교 조선교구의 창립에 중심 역할을
한 정하상 등이 서소문밖 사거리에서 처형됐으며, 1866년 병인박해 때
는 남종삼등이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을 포함해 한국 천주교회
의 토대를 닦았던 초기의 평신도 지도자 중 상당수가 서소문 순교터에
서 목숨을 바쳤으며 순교자 중에는 특히 무명의 여신자들이 많이 포함
돼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 천주교는 신앙의 자유가 어느 정도 확보되자 1892년 서소문
밖 순교터가 내려다보이는 약현에 성당을 세웠다. 1백명이 넘는 순교
의 꽃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약현성당(현 중림동성당)은 우리나라 최
초의 성당이자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로 종교 뿐 아니라 문화재 관
점에서도 중요성을 지닌다.
근대화와 개발의 물결 속에서 지금은 서소문공원으로 변모한 서
소문밖 순교터는 1984년 한국천주교회 창설 2백돌을맞아 이곳에 대형
순교기념비가 세워짐으로써 더욱 의미깊은 곳이 됐다. 한국 천주교
초기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순교장면을 담은 세개의 삼각형 조형물로
이루어진 순교기념비는 순교자들의 정신을 표상하듯 하늘을 향해 높
이 치솟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