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이마, 두툼한 와잠미, 긴 인중, 튼실한 하관, 죽 내리닫은 콧잔
등과 그 아래의 두툼한 콧망울, 걸쳐있듯 다소 작은 눈과 입, 돋보기안
경…. 관상면에서는 훌륭한 편이라는 국무총리. 전체적으로 후덕
한 인상을 주면서도 입주변의 기운은 고집도 관철할 줄 아는 올곧음이
있다는 느낌이라고들 말한다.

이런 얼굴표정이 그의 생활을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의 삶이 그의 얼
굴을 만들었는지 전후관계야 따질 수 없지만 어쨌든 이총리는 좌우명을
『한점 부끄럼없이 살자. 거짓말하지 말자. 돈에 구애받지 말자』로 정하
고 있다. 이총리를 이야기할때 곧잘 따라붙는 화제들은 이러한 얼굴생김
대로의 좌우명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그의 어투와 관련된 것이다. 이총리는 어느 대담장에
서든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나는 뭘 숨기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또는 『학교선생출신으로, 거짓말할 사람은 아니다』라고도
한다. 거짓말하며 살지 않겠다는 평소 소신이 어느 장소 누구에게든 습
관처럼, 또 접속어처럼 말과 말 사이에 끼어든다.

=== 당직 마치는 사람까지도 챙기는 「자상함」 ====.

이러한 태도는 5월3일 한국편집인협회 조찬모임에서 차차기 대권 도
전 시사로 해석될만한 발언으로 세간의 관심을 끈 데서도 나타났다. 15
대대통령선거때는 분명히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5∼6년뒤에는 혹시
바람 피울지 모른다』며 차차기 대권도전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스
스로 『인구에 회자될지 모르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던 것처럼, 이에
관해서는 솔직히 말한 것으로 봐도 좋을듯한 대목이었다. 39년 함남 함
흥생으로 6년뒤 64세가 되는 그로서 3김청산이라는 여권의 명분과 맞물
려 야심을 가질 법하다는 견해도 있어 이 말을 그의 심중피력으로 보는
사람이 다수다. 측근들은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 판에, 몇년뒤의 일을
어떻게 아느냐』며 오해하지 말것을 보도진에 당부했지만 이미 화살은 시
위를 떠났다. 「성취하고자 하는욕구」를 야심이라고 한다면 그는 분명히
대권도전 의사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문인지 그의 행동은 상당히 계산되고, 정치적인 것으로 해석되기
도 한다. 행동 하나하나가 그 「큰 뜻」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추측이다.

지난 4월25일 방송기자클럽 초청간담회에서 그는 『정치적이라는 말이 있
다』는 질문을 받고 『내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데도 남들이 그렇게 받아
들이지 않으면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서도 『15세이후 줄곧 이런 식
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것은 내 스타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총리의 정치적 성향을 엿볼 수있는 대목은 더 있다. 교수출신으로
첫 직선제 학장을 지내고, 직선제 총장에 출마해 당선되는 것부터가 학
자로서의 풍모와는 다른 별종이라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총장 시
절에 이미몇몇 국회의원의 후원회장을 맡았던 전력 등을 예로 꼽는 사람
도 있다. 또 5월7일 전국위가 개최되기 하루전인 6일 당직자들
이 대거 바뀌기 전에 대표등 당직자 9역과 총리제의로
고위당정 만찬을 가진 것등이 전례없는 파격이라는 것이다. 당직을 끝내
는 사람까지도 챙기는 것을 보면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는 셈이다. 「정
치적」이라는 잣대로 재면 확실히 요로에 사람을 확보해두는 방식으로 해
석될 수있는 대목이다.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그의 언급을 그 연장에서 해석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이총리는 공사석에서 김대통령과의 구연을 몇차례 언
급한 일이 있다. 지난 2월 한 TV대담에서 6.25 피난시절 8남매를 키우
는 이총리의 모친이 장사를 위해 시민증이 필요했으나 보증인이 없어 애
를 태우다 당시 장택상국무총리를 찾아가 비서관이었던 김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됐다고 술회했으며, 사석에서 79년 한 예식장에서 주례를
서던중 당시 총재직무 집행정지 상태에서 하객으로 참석한 김대통령을
『우리나라 최고의 야당정치인』이라고 다른 하객들에게 소개한 일 등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총리가 4번의 고사끝에 총리직을 수락한 것도
이같은 기억들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측근들은 아무리 계산된 행동이라 해도 이쯤되면 그 성실성으
로 미뤄 두루 주위를 챙기는 따뜻한 마음의 발로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총리는 「그늘진 곳을 찾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다니겠다」는
취임 일성에 따라 4개월여 동안 꾸준히 자신의 방침을 실천해왔다. 어린
이가 편히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 장애인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도록 하
겠다, 부녀자와 노약자가 밤거리를 맘놓고 다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강
력히 피력해왔고, 총리의 의중은 그대로 정책 지침화했다. 또 소년-소녀
가장이나 정신대 할머니들을 만나면 두 손을 꼭잡고 진심으로 마음속으
로부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려 애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온정주의
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에게는 확실히 「합리적인 휴머니스트」라는
타이틀이 어울린다는 평이다.

=== 합리주의적 태도 "-의 중간" ====.

그래서인지 이총리에게는 오랜 지기가 많다. 『나는 친구들을 별명으
로 불러본 적이 없다. 그것은 내가 친구를 존중하는 식이라고나 할까,
대단한 사회적 지위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남을 해롭게 하지 않으면서
돈독한 우의속에 살아온 우리 반평생을 생각하면 요즘 젊은이들의 경쟁
적 삶, 폐쇄적 친구관이 애처롭다.』 이총리의 친구론이다. 서울 혜화초
등학교 6년간 1등만 하고, 서울중-고를 나온 수재이면서도 주위에 친구
들이 늘 몰리는 원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어느 자리에 가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총리는 교류의 폭이 넓다.

또 교수시절의 이총리는 소신있는 강골선비로 정평이 나있다. 소신과
배짱대로 80년 「서울의 봄」때는 학생처장 신분으로 학생들을 두둔하고
나서 보안사에 끌려가 8일간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후에는 민정당 국회
의원 제의도 거절했다. 또 총리취임후 그는 『총칼의 힘을 빌려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의 횡포에 협조할 수 없었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이러한
자세는 중학교 1학년때 납북된 선친 이충영 변호사로부터 영향받은 바
크다고 한다. 법학부를 나와 일제때 판사로 재직한 이변호사는
한복을 입고 출근하거나, 창씨개명과 학병 권유 연설을 거부한 심지굳은
법조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도 그는 합리주의자에 가깝다는 것이 통설이다. 80년 학생시위때
「서울역회군」을 이끌어내고, 내무부장관과 총리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
어 안전귀가 보장을 받아낸 일 등이 그렇다. 업무 스타일에도 합리주의
적태도는 그대로 나타난다. 흔히 노도같은 강직함의 전총리와 유
연함의 대명사로 통하는 전총리의 가운데에 서있는 형국으로 표현
된다. 이총리가 취임초 기자단오찬에서 -전대통령 처벌로
그치고, 나머지하수인들은 무조건 단죄할 것이 아니라는 요지의 말을 한
것이나 자신을 고문했던 5공정권의 하수인을 마음으로 모두 용서했다는
말등이 모두 그렇다.

남대문 꼬리곰탕집이나 무교동 추어탕집등을 즐겨찾는 이총리의 소탈
함은 칼국수로 상징되는 식단과 성정이 어느 정도 어울린다. 그에
게는 이점이 하나의 과제라고 할 수있다. 배짱이 맞는 현 정권의 개혁기
조를 어떻게 자신의 소신과 연결시켜 국정운영에 반영할지가 그에게는
숙제이다. 그에따라 국정수행에 대한 국민적 평가를 통해 대권주자 문제
는 다시 거론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정치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