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정기국회 때의 일이다. 본회의에서 중요한 안건을 통과시키려던
여당에 비상이 걸렸다. 의결정족수에서 꼭 4명이 부족한 사실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국회관계자들은 『혹시나…』하며 국회내 의원회관을 뒤
지기시작했고, 10분이 지나지않아 잡담중인 5명의 의원들을 발견했다.

14대 국회는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될 법안 1백39건을 안고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부결」이나 「철회」란 판정도 받지못하고 어영부영 떠있다
14대 임기가 끝나면서 함께 「순장」되는 법안들이다. 1백39건의 리스트
에 올라있는 「방송법」을 보자.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통신위성인 무궁
화호를 띄워놓고도 위성방송 채널을 사용하지 못해 매달 7억여원씩 우
주에 날려보내고 있다.

폐기법률안에 대한 보도가 나오자, 한 대학교수는 전화를 걸어와 『간
단한규칙만 만들면 되는 청원을 의원들이 1년6개월간이나 질질 끌어 자
동폐기된다』며 이는 의원들의 「태업」이라고 흥분했다.

전문가들은 『폐기 법안만 문제가 아니다』며 더욱 목청을 높였다. 14
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중 1∼8월에 제출된 법안은 23%일뿐, 77%가 9∼
12월에 제출된 법안이라고 자료부터 들이댔다. 『9월부터 열리는 국회는
예산심의만 파고들어도 숨이 찰 판인데, 여유있게 심사할 수 있는 임시
국회는 놔두고 정신없는 시기에 법안을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수정되
지 않고 원문이 그대로 통과된 법안의 원안 가결률이 전체의 47%에 이
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국회는 처음부터 이랬을까. 예컨대 3대 국회(54∼58년)의 본회
의 개의일수는 6백9일이었고, 법안 심사일수는 1백91일이었다. 이에비
해 14대 국회는 1백67일의 본회의 개의일수중 법안 심사일수는 39일에
그쳤다.

결석률도 3대 국회는 11%였는데, 14대 국회는 13%에 이르렀다.

4.11총선에서는 의원들의 「호시절」을 더 이상 두고 보지않을 것이라
는 심상치않은 징조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15대 의원들은 4년뒤 자
신의 이름으로 내놓을 성적표를 그리며 개원을 맞이해야 하지않을까 싶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