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학계의 원로인 황패강 단국대명예교수(67)가 가깝고도 먼 이웃,
의 신화를 철저하게 탐구한 「신화의 연구」(지식산업사간)를 최
근 펴냈다.
『어느 민족이나 신화를 갖고 있지만 특히 은 신화가 단순히 과
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따
라서 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를 통해 역사와 문화의
원형에 접근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황교수는 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계기엔 언제나 신화적 발상이
배경에 깔려 있다며 대동아전쟁을 일으키는 일왕의 조칙 첫 머리에 「팔
굉일우」가 등장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신화시대의 마지막신의 아
들이자 역사시대의 첫번째왕인 신무가 을 통일한후 반포했다는 「팔
방을 덮어 집으로 삼음(팔굉일우)」이란 조칙은 전세계를 일왕에 귀속시
켜야 한다는 사상의 바탕을 이루며 국민을 동원하는데 결정적역할
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구비문학과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황교수가 의 신화를 연구
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 문교부의 지원으로 에서 2년간 연구할 기
회를 얻으면서. 단군과 박혁거세 등 한국 신화에 관한 논문을 쓴 황교
수는 자연스럽게 신화로 관심이 념혀졌고 체재 기간을 이용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신화의 기본틀을 이루는 고사기와
서기 등 기초문헌에 대한 세밀한 분석은 물론 신화와 관련되는 지역을
답사하면서 그곳에 소장된 문헌과 유적-유물등을 직접조사하는 한편 녹
음기와 사진기를 이용해 필요한 자료를 수집했다.
『답사여행을 통해 인의 생활 속에 신화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이때문에 귀국 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으로 답사를 떠났습니다. 한달 가까이 걸리는 장기여행은 도합 다섯 차
례에 이르고 1주일 남짓의 단기여행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다
녔습니다.』.
황교수는 이같은 연구와 조사를 통해 얻어진 성과를 바탕으로 「
왕권신화의 역사적 전개」 「신화와 한국」 「신화에 나타난 한일교류」
「한일신화의 천강 모티브」 등의 논문을 차례로 발표했다. 수준을 높이
기 위해 황교수는 각 논문을 학술발표회, 논문집 게재 등을 통해 다듬
어 나갔고 학계와도 적극적인 교류와 토론을 벌였다. 「신화의
연구」에는 지난 15년동안 이렇게 해서 완성된 8편의 논문이 담겨 있다.
『「의 고대문화는 우리가 전해 주었다」는 선입관을 갖지 않고 가
능한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의 신화에 접근하려고 했다』는 황교수는
『그럼에도 역시 한국과의 관련을 빼면 신화의 울타리가 상당부분
무너지고 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