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아무리 더럽고 징그러워도 자살하지 못하는 몇가지 이
유들이 있을 터이다. 그 중에서도 가족에 대한 애착은 우리가 죽지 못
하는 가장 큰핑계가 아닐까. 레온 드 빈터가 쓴 「호프만의 허기」(유혜
자 옮김. 디자인하우스 간)는 사랑의 대상을 차례로 잃어버리기에, 차
라리 죽는게 나을 것같은 외로운 한 중년남자의 절망을 기록한 책이다.

호프만은 양친이 모두 나치 수용소에 끌려가 죽는 바람에 외로운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결혼해서 애지중지 키운 쌍둥이 딸중 하나
는 여덟살 나이에 백혈병으로 죽고, 남은딸도 마약중독에 빠져 치사량
의 주사를 맞고 자살한다. 아내가 불륜의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뒤늦
게 알게 되는 데다가, 한 눈에 반한 젊은 연인마저도 호프만을 배신하
고 떠난다. 이쯤 되면 구질구질한 목숨을 끝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
디 있으랴. 그러나, 그는 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대신 음식에 집착하
여 비만증에 걸리는 「만성적인 자기죽이기」를 택한다.

합병증인 심장병으로 쓰러졌다 회복되면서 그는 자신의 정신적 지
주,스피노자를 펼쳐들고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자신이나 사랑하는 이
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받아들이고 그 반대로 슬픔을 줄
수있는 것은 거부하려고 노력하겠나이다.』 절망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
는 건 결국 사랑이란 뜻인가?.

호프만의 비극적인 인생은 다층적 의미로 해석될 수가 있다. 애정
결핍과 낙심이 식탐으로 변하는 「식이장애 환자」로 파악하거나 정년퇴
직을 눈앞에 둔 「갱년기 우울증」 정도로 치면 독서의 재미가 반감된다.

만약 그를 세기말적인 공허와 타락한 유럽 문화의 피해자로 이해
한다면 좀 낫겠지만 그게 전부는 또 아니다. 「지성」이 정신의 중추부
라는 신념과 「욕망」의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고민 많은 지식인으로
파악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등장인물이 이렇게
여러 가지로 변신할 때 독자들은 아마도 움직이는 「정신의 생동감」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제임스 본드식의 첩보물 분위기와 철학적 구절들의 삽입이
약간의 작위적이란 느낌이 들고, 시드니 셀던류의 소설에 나오는 만화
같은 인물들에만 익숙한 이들에게는 지적인 호프만의 상념들이 낯설겠
다는 짐작도 간다. 어차피 소설가도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제공하는
문화공급자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작가의 「지식/감각」의 양수겸장식 전
략을 편하게 즐겨봐도 괜찮겠다. 좀 찝찝한 건, 또다른 뚱뚱보 등장인
물 프레디 만치니와 펠릭스 호프만이 어떤관계가 있는지 잘 이해가 가
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러 군데서 격찬을 받은 바 있으니 플롯과 구도
에는 별 문제가 없을 터인데 단순한 소설만 읽은 전력 때문인가 영 헷
갈린다. 그저 시간을 보낼 목적이 아니라 윤리학을 공부하는 경건한
태도로 책을 펼쳐야 했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