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김 대선 출마하면 필승" 판단 ###.
좀 성급하긴 하지만, 97년 12월의 15대 대통령 선거전을 전망해 보자.
현재의 여야 구도가 그대로 유지돼 에선 현재 거론되는 대권후
보군 가운데 대통령이 적극 후원하는 한 후보가 출마하고 야당에
선 국민회의 총재, 자민련의 총재가 나서는 3파전이 벌어지
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물론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 결과를 자신할
수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번 총선이후 큰 변수가 없는 한 후보가 유리할 것
같다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객관적인 데이터도 이런 가정을 뒷
받침한다. 87년 대선 때부터 15대 총선 때까지 9년 동안 3김은 모두 여
섯번의 선거를 치렀다. 득표로만 볼 때 결과는 대통령의 완승. 여
섯번의 선거중 김대통령이 득표율 1위 자리를 놓친 적은 한 번도 없다
(13대 총선에서당시 총재의 평민당 의석수가 총재의 통일
민주당보다 많았지만 득표율은 통일 민주당이 앞섰다. 지난 해 6.27 지
자제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데이터상으로도 현재같은 3김정치의 지
역구도로 간다면 김대통령이 지원하는 후보가 승산이 크다는
얘기다. 이 서울에서 사상 최초로 승리한 4.11 총선 후 현재 정
국에선 더욱 설득력 있는 논리다.
==== 여권 일부에선 「대권 필승 전략」이란 분석 =====.
그래서 나오는 것이 「YS의 DJ·JP 살리기」란 정국 해석법. 지난 4월
17일 대통령은 전격적인 여야 영수회담을 제의했다. 김대통령은
이제의가 있기 전까지는 계속된 씨의 영수회담 요구를 단한번도
받아들인 적이 없던 터였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그 뜻을 의아해 하
면서도 『김대통령이 11석이긴 하지만 여소야대 정국이 되자 안정된 정국
운영을 위해 야당과 대화정치를 하려는 것』으로들 분석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정치를 잘 아는 사람들의 시각은 다소 달랐다.
김대통령이 『다음 대선을 의식, 곧바로 양 김과 고난도의 정치게임에 착
수했다』는 분석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김대통령이 양 김을 대
화상대로 인정해서 영수회담을 제의했다기보다는 곤경에 처한 「양김 살
리기」에 의도적으로 나섰다는 것이었다.
「YS의 DJ·JP 살리기」의 논거는 이렇다. 김대통령은 이번 총선에서
와 자민련이 얻은 득표수 등의 결과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김대
중 두 총재는 결코 직선제로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다는 결론
에 다다랐으며, 따라서 두 총재가 출마할 경우
은 어떤 후보를 내세워도 내년 12월의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
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의 안정적인 정권재창출을 위
해서는 무엇보다 김종필 두 사람이 반드시 대선후보로 출마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대통령으로서는
총선이후 입지가 다소 흔들리고 있는 이들 두 김총재에게 힘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결코 대권출마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유도해나갈 필요성이
생겼고, 이것이 행동으로 나타는 것이 3야당대표와의 영수회담이라는 분
석이다.
실제로 김대통령의 「DJ·JP 살리기」가 치밀하게 준비된 여권 주도의
정국운용 전략이고 여권이 이를 총선 직후 길게는 총선 전부터 대비해
온 흔적도 보인다. 여권 일부에선 양김총재가 다음 대선에 나오는 구도
를 「필승전략」이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4.11 총선이 「의 승리」로 결판난 지난 4월12일 당시 정가의
주된관측은 「총재의 대통령 출마 가능성은 물건너 갔으며 다시 정
계은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권 정보에 정통한
한정가의 소식통은 다음과 같은 정국전망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 대통령은 오히려 ·, 야당의 두 김총재에게
힘을 실어줘 같이 정국을 끌고 나가려 할 것이다.』 그는 『김대통령이 그
동안 거부해 왔던 야권의 여야 영수회담 요구를 흔쾌히 수용할 것으로
본다』고도 말했다. 그로부터 불과 닷새 후 대통령은 야당의 김대
중·· 총재와 대표에게 연쇄회동을 제의했고 야당 총재들
도 이에 이의없이 호응했다. 참모들은, 4.11총선 전 이미 선거
결과가 좋을 경우 여야 영수회담을 성사시킨다는 전략을 세웠고 김대통
령에게 이를 사전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DJ·JP의 이해와도 맞아 떨어져 -----.
그렇다면 · 두 총재가 「YS의 DJ·JP 살리기」에 적극 호
응하게 된 정치적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총재의 4.11총선이 끝난
후 처지는 「곤경」 그 자체였다. 특히 서울 선거에서 패배한 충격은 엄청
났다. 당내외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이겨낼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편에선 DJ의 2선 후퇴를 전제로 한 야권대통합, 조
순을 내세운 대권대리전, JP와 연대 등 「성급한」 전망이 끊이지
않았다. 호남에서 조차 「 대타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 정도였다.
4당구조에서 가 25.3득표율에 머물렀다는 것은 국민회의
입장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완전 패배」였다. 선거일 직전 국민회의
의원은 『만약 14번(총재의 전국구 순번)이 안된다면 4당구
조에서 득표율 25대에 머무른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당은 망하는 것
과 마찬가지』라고 단정할 정도였다. 당의 선거실무를 총괄하는 선거기획
단장을 맡았던 이의원조차 「4당의 산술평균도 못하는데 어떻게 집권을
바라보겠느냐」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 선거 직전 여당의 한 대권주자도
『가 90석에 못미치면 총재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도 못
한다』고 말해 여야가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총재가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4월16일 당선자 대
회에서 『마지막으로 이기면 다 이기는 것이다. 내년에 이기면 떨어진 사
람도 다이기는 것』이라며 「대권 도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는 『여
전히 우리당이 제1야당』이라며 총선결과를 자신에 대한 심판으로 받아들
이지 않았다. 김총재로서는 내년 대선출마 여부를 결정짓겠다고 한 올
연말까지는 「가 제1당」이란 공세적 자세를 유지하며 곤경을 극
복해 나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자민련의 총재도 총재와 같은 수준은 아니었으나 어렵기
는 마찬가지. 50석의 의석수를 얻은 총재는 일단 「약진」이라는 평
을 얻었으나 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각제가 지
론인 김총재가 50석의 자민련 의석수로는 개헌을 추진할 수도 없었고 신
한국당이 얻은 의석수로 보아 다른 야당과 힘을 합해도 개헌은 난망이었
다.
당장 당내에서 불거져 나온 언부총재의 「지도체제 개편론」과 충
청권·TK지역 간 갈등도 어떻게 비화할지 모르는 형국이었다. 총
재로서는 더우기 자민련의 자력만으로는 대권재도전에 승산이 없다는 것
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일단은 여권과의 비적대적 관계를 유지
하며 정황을 분석, 최종결심을 해야할 필요성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때 나온 것이 대통령측의 여야 회담 제의. 선거
결과가 나온 지 불과 닷새 만이었다. 여야 영수회담은 전격적으
로 이뤄졌다. 실제로 여야 간에 사전 조율도 없었다. 대통령은 김
대중총재와의 회담 하루 전에 거의 「일방적으로 통고」하는 방식으로 회
담을 제의했고 총재를 비롯한 야당 총재들은 이에 군말없이 응했
다.
『김대통령으로서는 총재를 곤경에 몰아넣을 이유가 하나도 없
다. 야권 3인과 회동했지만 주관심사는 DJ다. 여권 내부만 잘 추스리면
다음 대선에서 여권의 세대교체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게 객관적
상황이다. DJ의 힘을 키워 줄 필요도 없지만 DJ의 움직임에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를 다음 대선 때까지 같이 끌고 가는
것이다. DJ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DJ는 위기관리와 새로
운 여건변화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YS와 DJ의 만남은
의미있는 일이다.』 김대통령과 DJ·JP 등 야당 총재와의 회담에 대한 야
당소식통의 분석이다.
와 총재의 이해가 일치했다는 것은 -회담
성사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회담 불과 하루 전 총재에게
회담을 제의하러 간 정무수석은 김총재에게 『시일이 촉박
해서 죄송합니다만, 대통령의 기존 일정 때문에 그러니 받아주셨으면 좋
겠습니다』하고 말했다고 한다. 김총재는 『나도 뭘 이야기해야 할지 정리
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만 대통령이 하자고 하니 어쩌겠느냐』고 흔쾌히
회담 제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 DJ-JP는 『기다리면 여건 변화한다』 ====.
대통령과 의 「DJ·JP 살리기」는 기본적으로 만약 다음
대선에서 · 총재 아닌 다른 후보가 나오면 「예측불허」가
될지도 모른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여권으로선 「예측 가능한 정
치」더 나아가서 「예측 가능한 대선전」을 치르고 싶은 것이다. 한편으로
는 4.11 총선 승리로 정국주도권을 쥔 대통령으로선 DJ와 JP를 너
무 몰아붙여도 점수를 잃을 우려가 있다는 점도 고려 사항이다. 김대통
령은 또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해야 할 당장의 과제도 안고 있다. 무소속
을 비롯, 야권 당선자를 영입할 수밖에 없는데 15대 개원국회를 앞두고
야당과 굳이 긴장관계를 조성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대선자금」 문제도 야당 총재와의 회담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번 거르는
효과를 낼 수 있었다.
「DJ·JP 살리기」는 앞으로도 김대통령 주도 하에 계속될 전망이다.
야당의 양김총재도 이에 적극 호응할 것이 예상된다. 물론 여야 간 「소
규모 전투」는 벌어지겠지만 여야의 대선 후보가 확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97년 전반기, 적어도 금년 말까지는 3김이 격돌하는 대규모 전선이 형성
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인 것이다. 대통령은 끝까지 야당의 양
김을 대선전으로 끌고 가려 할 것이고 양 김총재는 제1당과 2당의 총재
로서 YS-DJ 구도 내지캐스팅 보트 역할을 유도해 내려할 것이기 때문이
다.
양 김총재가 시간을 벌며 기다리는 여건변화는 여권의 분열이다. 앞
으로 3김 간 대결은 이 여건변화를 둘러싼 장기전이 될 공산이 크다. 청
와대 회담이 끝난 후인 4월20일 총재가 광주를 방문해 『기다리면
여건 변화가 도래한다』 『처음으로 전국적 공천을 해 상당한 득표성과를
거뒀고 이를 인정받은 게 회담이었다』고 한 발언은 그런 관점에
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