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5.18사건」의 제5차 공판은 22일 오전 10시쯤 시작됐다. 재
판장인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의 김영일 부장판사는 , , 유
학성, 황영시, 차규헌, , , 이학봉, 이희성, 주영복, 정호
용피고인 등 5.18사건 관련 피고인 11명을 호명한 뒤 4차 공판의 요지
를 피고인들에게 고지했다. 이어 전피고인 변호인측의 의견진술에 이어
신문이 진행됐다.
-- 김상희검사=12.12 당시 피고인은 합수부측 병력을 동원, 장태완수
경사령관등 육본측 장성들을 강제 연행했지요.
▲전피고인=합수부측 병력을 동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반란죄
에 대한 수사를 위해 장성들을 연행한 적은 있습니다.
-- 김검사=12.12직후 이희성 피고인을 육참총장에 임명하는 등 육본
군 인사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했지요.
▲전피고인=군인사권자인 대통령이 한 일입니다.
-- 김검사=공군참모총장 출신인 주영복피고인을 국방장관에 임명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있지요.
▲전피고인=없습니다.
-- 김검사=계엄군은 치안질서를 회복하면 본연의 임무로 복귀하는 것
이 마땅하죠.
▲전피고인=물론이죠.
-- 김검사=그럼에도 피고인은 군본연의 임무로 복귀하지 않고 정치에
개입해 정권을 장악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죠.
▲전피고인=10.27 계엄이 지속되는 등 사회가 안정되지 않아서 기
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합수본부장의 임무를 수행했을 뿐 다른 선택
이 없었습니다.
-- 김검사=피고인은 80년2월 중순쯤 보안사 정보처 산하에 언론대책반
을 설치했지요.
▲전피고인=기억나지 않습니다.
-- 김검사=79년 12월 하순쯤부터 , 피고인 등이 집권기반
강화를 위해 이상재 준위를 내세워 언론계 인사를 접촉, 회유하는 등 언
론공작에 착수했다는 데 알고 있나요.
▲전피고인=모릅니다.
-- 김검사=이상재 준위는 「강기덕 전무」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언론계
중진 18명을 만나 신군부측에 호의적인 보도를 하도록 회유한 사실을 알
고 있나요.
▲전피고인=모릅니다.
-- 김검사=이런 주요 사안은 보안사령관의 결재를 맡지 않나요.
▲전피고인=본인은 이런 사안에 대해 대수롭게 생각지 않아 기억나
지 않습니다.
-- 김검사=언론대책반의 설치로 보안사가 오히려 계엄사의 보도검열
업무를 조정, 감독하게 됐지요.
▲전피고인=모릅니다. 보안사 언론반은 계엄령이 선포되면 군계엄
계획에 따라 자체적으로 만들게 돼있는 겁니다.
-- 김검사=K공작계획을 알고 있지요.
▲전피고인=5공청산 청문회 당시 처음 들었습니다.
-- 김검사=(K공작 사본을 제시하며)보안사령관 시절에 이를 결재한
사실이 있나요.
▲전피고인=기억나지 않습니다.
-- 김검사=결재란의 사령관란에 결재를 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전피고인=기억 안납니다. 그런 일은 처장 선에서 이뤄지는 것이
고 이런 일은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 김검사=K공작 계획의 1단계가 80년3월24일부터 시작된 점에 비춰
이 계획은 적어도 3월 중순 이전에 입안된 것으로 보이는데 언제 이 계
획을 입안했나요.
▲전피고인=전혀 모릅니다. 왜 K를 썼는지도 모릅니다.
-- 김검사=이 계획 목적은 「단결된 군부의 기반을 주축으로 지속적인
국력신장을 위한 안정세력을 구축함에 있음」이라고 돼있는데 이는 신군
부측의 정권장악 기도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키 위한 것이 아닌가요.
-- 재판장=(신문을 저지하며) 은 지금 이 계획의 사본을 제
시하고 있는데 원본은 어디에 있고 입수경위는 어떤 것인지 설명해주시
죠.
-- 김검사=증거능력이 있는지는 로서도 판단되지 않으나 청문회
당시 의원이 보안사에서 유출된 것이라며 제시한 것입니다.
-- 이양우변호사= 스스로도 증거능력을 의심하는 자료를 제시하
며 피고인을 신문하는 것은 부당한 심증을 줄 우려가 있으니 제재 바랍
니다.
-- 재판장=피고인이 기억이 없다고 말하니 기억을 더듬는다는 취지에
서 은 계속하십시오.
▲전피고인=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집권 시나리오가 가장 중
요한데 보안사 언론반장을 알지도 못하는 일개 준위에게 맡기겠습니까.
, 이학봉이면 모르겠지만 준위를 어떻게 믿고 일을 시킵니까.
-- 김검사=당시 회유공작의 대상이 7대 중앙 일간지와 5대 방송사,
2대 통신사의 사장과 주필, 논설위원, 편집국장 등 총 94명이었다는데
사실인가요.
▲전피고인=모릅니다.
-- 김검사=94명을 시국관이 양호하거나 협조가능한 사람, 야당성향이
강한 사람으로 분류해 언론인 해직조치시에 참고자료로 활용하지 않았
나요.
▲전피고인=기억나지 않습니다. 실무자가 한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 김검사=80년 4월14일 피고인은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하게 됐
지요.
▲전피고인=그렇습니다.
-- 김검사=피고인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직하게 된 경위는 어떤가
요.
▲전피고인=당시 중앙정보부는 부장인 김재규가 직접 어마어마한
사건을 저질렀기 때문에 중정기능이 마비된 상태였습니다. 이에 따라
최대통령이 중정기능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본인에게 중정부장을 맡아달
라고 했던 것입니다.
-- 김검사=피고인은 3월말쯤 신현확 국무총리를 방문해 중앙정보부장
직을 겸직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적이 있지요.
▲전피고인=없습니다.
-- 김검사=신 전총리는 에서 『피고인이 그같은 희망을 피력하는
데 대해 「군과 민간의 정보기관을 한 사람, 특히 현역군인인 피고인이
장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대했다』고 하는데요.
▲전피고인=그 분은 연세가 많은데다 16년 전의 일이라 착각하는
모양입니다. 총리를 찾아갔다면 이미 대통령의 내부통보를 받고 대통령
직속기관인 중정부장으로서 총리의 협조를 부탁하기 위해 찾아갔을 것
입니다.
-- 김검사=신총리의 진술에 따르면 80년3월쯤 대통령을 자신
이 찾아가 중정부장에 민간인을 임명해 보안사가 독점하고 있는 정보계
통을 양립시켜야 한다고 건의했고 최대통령도 공감했다고 하고, 최대통
령도 이같은 의견을 피고인에게 말해주었다고 하는데요.
▲전피고인=그런 사실 전혀 없습니다.
-- 김검사=4월쯤 이희성피고인도 최대통령과 최광수비서실장에게 한
나라의 군과 민간정보기관을 한 사람이 관장하는 것은 문제라면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는데, 알고 있었나요.
▲전피고인=모르고 있었습니다.
-- 김검사=피고인은 신총리에게 중정부장 겸직 의사를 표명했다가 반
대의사에 부딪치자 대통령과 비서실장에게 직접 건의해 관철시킨 것 아
닌가요.
▲전피고인=아닙니다. 최대통령이 살아계시니까 직접 거기에 알아
보면 될 것 아닙니까.
-- 김검사=피고인이 중정부장을 겸직함으로써 군과 민간의 정보를 독
점하게 된 것 아닙니까.
▲전피고인=아닙니다. 합수본부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찰과
군의 정보를 통해 시국상황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 김검사=국무회의에도 참석해 피고인의 의견을 개진하는등 영향력
이 커진 것 아닙니까.
▲전피고인=중정부장은 국무회의에 함부로 참석하지 못합니다. 또
한 참석해도 발언권은 없습니다.
-- 김검사=또 중정부장을 겸직하게 되면 중정의 막대한 예산을 활용
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전피고인=아닙니다. 예산은 국회가 편성한대로 쓰고 감사를 받
기 때문에 함부로 쓰지 못합니다.
-- 김검사=그러나 판공비등 피고인이 재량으로 쓸 수 있는 범위가 넓
어진것은 맞지요.
▲전피고인=그렇습니다.
-- 김검사=결국 피고인은 예산을 더 여유있게 쓰기 위해 중정부장에
희망을 가진 것도 이유가 된다는 말이지요.
▲전피고인=세상에 어느 공직자가 예산보고 자리를 탐낸다는 말입
니까(웃음).
-- 김검사=피고인이 중정부장 서리를 겸직하게 됨으로써 그 영향력을
군에 한정하지 않고 점차 국정전반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된 것이지요.
▲전피고인=인정 못합니다. 비상계엄하에서는 합수부장의 권한이
중정부장의 권한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 김검사=당시 국내외 언론은 피고인이 정국의 전면에 등장한 것으
로 분석하면서 그 영향력의 확대로 정치발전이나 민주화 일정에 차질이
초래될 것이라고 우려했는데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전피고인=모르고 있었습니다.
-- 김검사=피고인은 80년4월29일 기자간담회에서 중정부장직을 장기
간 공석으로 두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고 최대통령의 하명에 따라 겸직
했는데 이것이 정치발전에 차질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전피고인=그런 걸로 기억합니다.
-- 김검사=이같은 발언은 정치발전이 저해될 것을 우려하는 국내외
시각을 의식한 발언 같은데요.
▲전피고인=내가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내 임무
만 충실히 하면 됐지 당시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언론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김검사=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피고인의 중정부장 겸직이야말로 집
권을 향한 가장 결정적인 전기가 된 것이 사실 아닙니까.
▲전피고인=전혀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