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정전협정 파기선언에 이어 판문점내 무장시위를 벌여
대북 경계심이 강화된 가운데 지난 67년과 73년 비무장지대(DMZ)에서 자
칫 남북한간 전면전으로 확대될 뻔한 무력충돌이 있었던 사실이 19일 처
음으로 공개됐다.

월간조선 5월호가 이날 민병돈 전특전사령관의 증언을 인용,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67년 4월12일 오후 11시께 최전방 강원도에 위치한 7사
단(사단장 정봉욱)은 관할 비무장지대에 북한군 1개 중대가 침투하자 곧
바로 야포사격으로 대응,북측병력을 거의 섬멸했다.

매복조로부터 북한군의 침투사실을 보고받은 정사단장은 즉각 적을
격멸할 것을 명령했고 포병연대는 약 10분간 조명탄 87발과 고폭탄 5백85
발 등 총 6백72발의 포탄을 집중적으로 발사했다.

7사단은 다음날 수색에서 북한군 시체 4구와 기관총 1정을 노획했
다.비무장지대에 중대병력급이 휴전선을 넘어 침투한 것은 지난 53년 정
전이후 처음일뿐만 아니라 비무장지대에 야포를 사격한 최초의 사건이었
다.

지난 73년 3월 7일에는 북한군이 비무장지대 남측의 한국군에 사격
을 가하자 우리측이 비무장지대 북한측 감시초소와 좌우병력 배치선을 공
격하는 등 반격을 감행하는 충돌도 빚어졌다.

3사단 관할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표지판 보수작업을 마치고 귀대
하는 한국군에 북측이 총격을 가해 인솔자인 대위 1명과 하사 1명이 중
상을 입자 우리측은 북측제559 감시초소(GP)와 그 좌우의 병력배치선에
포격을 가해 두 부하를 구출했다.

우리군은 날이 저물자 사단의 모든 트럭을 동원,전조등을 켠채 비
무장지대 남방한계선까지 진출시킨뒤 밤새 북을 향해 `헤드라이트 시위'
를 벌였다.

김일성은 이 충돌이 있은뒤 전군에 비상을 걸고 북한 전역에 동원
령을 하달했으나 UN군 사령관이 북에 대해 부상자를 구출하기 위한 자위
적 조치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북도 더이상 대응하지 않아 전쟁은 일어나
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