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8월29일 밤 10시. 청중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속에 대통령이 후보 지명 수락연설에 나섰다. 연설 서
두가 항상 그러하듯 은 감사의 대상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지
난 4년간 우리가 이룩한 일들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땀흘린 결실이었
다. 그러나 꼭 한 명을 꼽아야 한다면 그 사람은 나의 파트너이자 나의
친구, 그리고 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통령인 앨 고어다.…』 청중들이
일제히 환성을 터뜨리는 가운데 고어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보스」에
게 목례를 보냈다.

/// "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통령" ///.

「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통령」. 은 러닝 메이트에게 최상급
찬사를 선사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 표현이 결코 과장된 것
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앨 고어는 미국 부통령이 지니는 의미를 한
단계격상시켰다. 역사상 어떤 부통령도 앨 고어만큼 대통령과 대등한 관
계를 유지하며, 많은 책임을 부여받은 사례가 없었다.』 미 역대 부통령
역할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로즈 칼리지 마이클 넬슨 교수의 설명
이다.

공화당 밥 돌 후보의 러닝 메이트 잭 켐프는 샌디에이고 전당대회 때
기자들로부터 『어떤 부통령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연히 공
화당 출신 부통령인 댄 퀘일, 조지 부시, 제럴드 포드 중 한 사람 이름
이 튀어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켐프는 자신이 타도해야 할 대상
인 「앨 고어」를 꼽았다.

대통령의 업무수행 능력에 대한 지지도는 이제 겨우 50%를 넘
고 있다. 최악 상황을 맞았던 94년에는 한때 36%까지 곤두박질친 적도
있다. 그러나 고어의 업무수행 능력에 대한 국민 지지도는 항상 60%선을
유지해 왔다.

과거 미국 부통령들은 곧잘 「미소짓는 꼭두각시」에 비유돼 왔다. 정
책 결정 과정에는 전혀 개입하지 못한 채 대통령이 중요한 정책을 발표
하거나, 법안 서명식을 가질 때 옆에 서서 환한 웃음을 띠는 것이 고작
이었기 때문이다.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주요 회의에 처음 참
석한 것은 카터행정부 당시 월터 먼데일이 꼽힌다. 그러나 대통령의 진
정한 파트너로서 정부 정책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앨 고어가
처음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내 고어 사무실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불과스무 걸음쯤 떨어져 있다. 고어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을 찾
아가 정책 방향을 협의한다. 참모진은 『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중 고어가 깊숙이 간여하지 않은 일은 거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대통령은 몇가지 분야 정책은 아예 앨 고어에게 떼어주면서 책임
지고 추진하도록 위임했다. 고어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환경 분야를
비롯, 행정부 개혁, 통신, 미-러 관계 등이 대표적인 예다. 고어는 이들
관할 구역에서 이 자랑할 만한 업적들을 만들어 냈다.

고어는 기업 리엔지니어링 개념을 도입, 연방 공무원수를 24만명이나
감축하는 「군살 빼기」에 성공했다. 대통령은 요즘 입만 열면 『케
네디 행정부 이후 가장 작은 정부를 실현했다』고 우쭐대고 있다.
대통령은 이번 후보 지명 수락 연설에서 『오는 2000년까지 미국의 모든
학교, 도서실은 정보 고속도로를 통해 연결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것
역시 고어 부통령이 열의를 갖고 추진해온 정보통신 산업 육성 정책의
부산물이다.

● 아버지 앨 고어1세 "아들을 대통령으로 키웠다".

테네시주 상하원 의원을 30년간 역임한 고어 부통령의 아버지 앨 고
어 1세는 기자회견에서 『아들을 대통령감으로 키워왔다』고 고백한 바 있
다. 또 고어 부통령은 지난 88년 선거 당시 39세 나이로 대권에 도전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성공한 부통령 고어가 차차기 정권을 노리는 것은
당연한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고어는 92년 대통령의 러닝 메이
트로 선정된 이후 단 한번도 정치적 야심을 드러낸 적이 없다. 자신이
추진한 정책도 언제나 공로로 돌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고어보다 열살 위인 누이는 「골초」였고, 결국 84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통령이 「담배 규제 정책」을 발표
한 것도 고어의 끈질긴 설득에 따른 것이었다. 이 정책에 대한 일반 유
권자 호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고어는 전당 대회 연설에서 의 결
단을 높이 추켜 세웠다. 『담배회사들의 로비력은 정평이 나 있다. 과거
역대 대통령들이 담배 폐해를 알면서도 손을 못댄 것은 결코 우연이 아
니다. 대통령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청중속에 앉아 있
던 힐러리 여사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띤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고어의 성장 배경과 전력은 여러가지 면에서 과는 대비를 이룬
다. 결손가정에서 태어난 이 잡초처럼 역경을 헤쳐 왔다면, 고어
는 정통 정치 엘리트 코스의 탄탄대로를 걸어왔다고 할수 있다. 앨 고어
가 태어나던 48년 3월 31일 아버지는 이미 미 의사당에서 활약하고 있었
다. 고어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을 직접 접하면서
워싱턴 정가 분위기를 익혔다.

학생으로서 베트남전을 맞은 고어는 대통령과 마찬
가지로 반전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졸업과 동시에 육군에 입대했고 베
트남전에 비전투요원으로 참가했다. 당시 고어의 아버지는 70년 상원 선
거에서 접전을 치르고 있었다. 『고어는 병역을 기피한 아들을 뒀다는 정
치적 부담을 아버지에게 주지 않기 위해 입대를 결심했다』고 친구들은
설명한다.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고어는 고향에서 일간지 「테네시안」 기
자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28세가 됐을 때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84년
이후 상원선거에서 두 번승리했다.

● 유연하지 못한 공석 태도 농담으로 보완.

고어는 대중 정치인으로서 결정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 연단에만 서
면 지나치게 굳어지고 사람들 속에 잘 섞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웃음이
자연스럽지 못하며 연설할 때 엉뚱한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88년 예비선거에서 고전한 것도 이같은 연기력 부족이 한 몫을 했다는
설명이다. 앨 고어 자신도 이런 문제점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경호
요원들 속에 파묻힌 앨 고어를 단번에 알아내는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전당대회에 앞서 참전용사들 집회에 참석한 고어는 연설 도중 이런 질문
을 던졌다. 어리둥절해 있는 청중들에게 고어는 『뻣뻣하게 몸이 굳은 사
람을 찾아내면 됩니다』하고 모범답안을 알려줬다. 물론 청중석에서는 폭
소가 터졌다. 기자들은 연설후 『왜 스스로 약점을 거론했느냐』고 물었다.

『공개 석상에서 뻣뻣해지는 버릇을 나는 도저히 고칠 수 없다. 숨기고
감추려 하면 더 웃음거리가 돼지 않겠느냐.』 공석에서 스스로 농담거리
로 삼음으로써 약점을 보완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벌써 세차례나 전국무대 선거에 나서면서 경직성도 많이 해소
됐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88년 선거때 고어의 선거 자문역을 맡았던
빌캐릭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고어의 연설을 지켜보고는 『놀랍게 달라졌
다. 8년전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유연하고 노련해졌다』고 말했다.

고어가 4년후를 노리기 위해서는 우선 두가지 장애물을 통과해야 한
다. 올 11월 선거에서 -고어팀이 반드시 재선에 성공해야 하며,
2기 행정부가 국민들 축복속에 마무리돼야 한다. 고어가 입만 열
면 『이 재선에 성공하도록, 또 위대한 대통령이 되도록 보좌하겠
다』고 말하는 것도 정치적 야심의 다른 표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