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씨등 6명 총리공관에서 「실력 행사」 ###
### 유학성씨 "빨리 조치안하면 전쟁"주장 ###
### 최대통령 "재가전 정총장 연행은 위법" ###.
검찰은 12.12 2차공판에서 「12.12 그날 밤」의 상황중 새로운 사실
을 공개했다.
검찰의 신문사항에는 수사과정에서도 밝히지 않았던 내용들이 포함
돼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당일 보안사령관 등이 대통령에게 집단 재가를 요
청하며 「실력행사」를 한 과정이 자세히 밝혀졌다. 그러나 피고인들은
이중 자신들이 불리하거나 곤란한 질문에 대해선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우선 12월12일 밤 대통령(당시 직책·이하 같음)에 대한 집단
재가 요청은 황영시 1군단장이 처음 제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
안사령관이 밤 8시30분쯤 최대통령으로부터 정승화육참총장 연행에 대
한 재가를 받지못하고 30경비단으로 돌아오자 황1군단장이 『모두 함께
대통령을 찾아가자』고 제의했다는 것.
이에 따라 전씨와 유학성군수차관보, 황1군단장, 차규헌수도군단장,
백운택 71사단장, 박희도1공수여단장 등 6명이 승용차 2대에 나눠타고
밤 9시30분쯤 삼청동 총리공관에 도착했다. 당시 9사단장 등은
30경비단에 그대로 남아 상황 파악 및 연락을 맡았다.
전씨등은 군복차림에 권총 등을 소지했지만 권총은 풀어 자동차에
둔 채 접견실로 들어선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일각에서 최대통령에
대한 「권총협박설」까지 제기됐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먼저 공관에 와있던 신현확총리와 최광수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최대통령을 면담했다. 전씨가 먼저 최대통령에게 『전례가 있다』
며 재가를 요청했다.
검찰은 신총리의 진술을 통해 당시 최대통령의 반응을 자세히 공개
했다. 최대통령은 그동안 검찰 조사를 거부하면서 『당시 배석자들의 검
찰진술을 통해 재가 경위등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는데
그내용이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이다.
최대통령은 당시 『왜 절차를 무시하고 정총장 연행부터 했느냐. 재
가를 받기 전에 행동을 일으킨 것은 위법이다. 이 자리의 얘기만 듣고
재가해줄 수 없다. 사건경위를 다 들은후 판단해보고 책임자의 이야기
를 듣는등 절차를 밟지 않으면 재가를 못하겠다. 국방장관을 데려오라』
고 지시했다는 것.
이에 유군수차관보가 『빨리 조치를 안하면 일대 혼란이 일어나고 전
쟁을 초래하게 됩니다』고 하자 최대통령은 『그래요? 조용한데 무슨 불
상사요, 잠잠한데』라고 오히려 핀잔을 줬다는 것.
황1군단장도 『헌법도 국가와 국민의 안전보장을 위한 것인데, 지금
당장 안정이 흔들리는 판에 헌법절차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며
재가를 요구했다.
최대통령에게 6명의 장성이 이처럼 「실력행사」를 하고 있을 무렵,
행방이 묘연하던 노재현국방장관이 최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최대통령은 노장관에게 『빨리 총리공관으로 올라오라』고 지시를 내
린 후 계속 침묵을 지켰다. 최대통령이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있다가
『국방장관을 모시고 오라』고 하자 합수부측 장성들은 1시간여만에 총리
공관을 떠났다는게 검찰 수사결과다.
전씨는 이 과정에서 재가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박희도1공수여단장에
게 『빨리 부대로 복귀해 병력을 장악하라』고 부대출동 지시를 내렸다.
1공수여단 출동소식을 접한 윤성민육참차장 등 육본측은 밤 9시40분
쯤 9공수 병력출동 지시를 내렸다.
당시 당황한 30경비단 장성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부대장이나 참모
들에게 전화를 걸어 『정총장 연행은 대통령게게 보고된 사항』이라며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달라』고 설득했다는 것.
13일 0시30분쯤 30경비단 전화가 끊기자 , , 씨
등을 제외한 장성들은 보안사로 옮겨갔다. 그 때 노장관이 보안사로 전
씨에게 전화를 걸어 『국방부로 와 보고를 하라』고 지시했으나 전씨는
『장관이 보안사로 와 보고를 받으라』고 오히려 큰 소리를 쳤다는 것이
다. 검찰은 합수부측의 이같은 행위가 명백한 「하극상」에 해당된다고
규정했다.
검찰이 12.12의 「사실상」 성공시점을 장태완수경사령관의 체포로
본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검찰은 이날 신문에서 「끝까지 저항하
던 장태완수경사령관이 새벽 3시40분쯤 신윤희 수경사 헌병단부단장에
게 체포됨으로써 합수부측이 승자가 됐다」고 정의했다.
합수부측은 12.12 직후, 미국의 반발을 진무하기 위해 「특사」를 파
견한 사실도 밝혀졌다. 한-미연합사령관의 동의를 얻어야만 부대 이동
이 가능한 2기갑여단, 9사단을 합수부측이 함부로 동원한데 대해 당시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이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특사로 선발된 사람은 주미공사출신으로 영어에 능통, 「미국통」으로
불렸던 김윤호광주보병학교장. 합수부측은 13일 새벽 1시쯤 김씨에게
급거 상경하도록 지시했다.
검찰은 『김씨가 12.12 직후 구성된 「6인 군인사위원회」의 멤버 아
니냐』고 추궁했지만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6인위원회란 조직은 아예 없
었다』며 부인했다.
한편 정승화육참총장은 10.26 직후인 79년 11월24일 계엄확대회의
에서 『10.26은 국가적으론 불행한 일이 아니고, 유신체제는 잘못된 것』
이라는 발언을 한 사실도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