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태-월남전등 주요 외교정책 좌우 ###.
케네디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맥조지 번디(77)가 16
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의 최연소 문리대 학장이던 1961년, 케네디에 의해 국가안보
담당 특별보좌관으로 발탁된 그는 케네디 사망후 존슨 대통령 밑에서도
66년까지 같은 일을 했다. 그는 피그만 침공사건이나 미사일 위기,
베트남 참전 등과 같은 당시 미국의 주요한 외교정책 결정에 있어 핵심
역할을 했다.
번디는 케네디가 불러모은 젊고 명석한 보좌관들, 이른바 「 사
단」의 대표 주자중 하나였다. 여기에는 아서 슐레진저, 월트 로스토우,
테드 소렌슨 등이 포함된다. 『그는 똑똑하고 정말로 믿을 만한 사람이었
다』고 케네디 행정부 시절 경제보좌관을 지낸 존 갈브레이스 교수는 말
한다.
62년 케네디가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을 때, 그에게 「각하,
러시아가 에 공격용 미사일을 배치했다는 명백한 사진 증거가 있습
니다」라고 보고한 사람이 바로 번디였다.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에드
워드 케네디상원의원은 『그가 없었다면 우리는 「뉴 프론티어」정신을 갖
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번디는 1940년 를 졸업하고 2차대전중에는 미군 정보장교로 일
했다.
49년에 교수, 이어 53년에 학사학위 소지자로 문리대 최연
소 학장이 됐다. 케네디와는 교외에 소재한 덱스터 고등학교 동
창생이었다.
공직을 떠난 뒤 66∼79년 포드 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그후 10년동안
뉴욕대에서 역사학 교수를 지냈다. 90년 이후로는 카네기 재단에서 일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