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담한 내환 (83) ////.

한성순보의 기사 가운데 재미있는 것의 하나는 국왕의 동정에 관해 칙
유-행행-흠록등 황제의 경우에 표현하는 낱말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그 대목은 국왕도 해롭지 않은 듯 했다.

『도성에 와있는 청국 관원들이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우리 조선은 엄연한 자주국이옵니다. 군왕의 일을 어떻게 표현하건
남의나라에서 간섭할 수 없을 것이오이다.』
김만식의 대답이었다.

국왕은 아무래도 입헌군주제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미국서는 대통령을 백성들이 뽑고 있다며? 대통령은 임금과 같은 사
람인가? 영익의 말을 들으니, 국왕은 없고 대통령이 통치를 하되 모든
법령은 의회에서 정한다는데 과연 그런가?』
『…그것을 공화제라 하는줄 아옵니다.』.

김만식은 사촌 동생 윤식을 통해 이런 일의 대강은 듣고 있었다.

『만약에 조선이 공화제의 나라가 된다면 5백년 종묘사직은 없어지게
되는가?』
『황공한 말씀이오이다. 어찌 그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겠나이까.』
민영목은 목을 움츠리며 말했다.

김옥균을 비롯한 독립당 면면들이 입헌군주제나 공화제를 꿈꾸고 있었
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점차 척신들과의 대결 국면에 접어들면서 그같은 모함을 받기
십상이었고, 국왕 또한 김옥균등의 정치사상을 의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한성판윤 박영효는 도성안의 도로와 하천을 정비하는등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했으나 넉달만에 광주유수로 나가게 되었다.

원체 자주 갈리는 것이 한성판윤이긴 하지만 박영효는 왕비와 민영익
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도성밖으로 내쫓기 위한 인
사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한편으론 신식군대를 양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었다.

광주유수는 남한산성에 군영을 둔 수어사를 겸하기 때문이다.

박영효는 국왕께 부임인사를 올리는 자리에서 건의했다.

『군란후, 구군영을 폐지하고, 4영을 설치했으나 병력은 모두해서 2천
에 불과하옵니다. 지금 도성의 치안을 청국군과 함께 담당하고 있는바
언제까지나 외국군대를 주둔시킬 수는 없는 일이옵니다. 하루속히 신식
군대를 적어도 5천정도는 양성해야 하겠소이다. 구군영에 속했던 군사들
가운데 쓸만한 사람이 남아 있으니 이들과 새로 뽑을 장정 해서 1천명을
훈련시킨 뒤, 반은 도성안 경비에 충당하고 나머지 반은 남한산성에 주
둔시키고자 하나이다.』
『훈련시킬 교관이 없지 않소? 또다시 외국군 장교를 데려와야 하오?』
국왕은 선뜻 관심을 표시했다.

『의 예비사관학교 「도야마」 학교에 유학중인 조선청년이 30여명이
오이다. 재작년과 작년, 두번에 걸쳐 입학을 했으며, 2년 수학이라 몇달
후면 10여명이 귀국할 것이옵니다.』
『경이 서 돌아와, 선발했던 젊은이들 말이로군.』.

『그전해에 입학한 사람도 열명가량 되옵니다.』
국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오. 내 외아문에 일러놓을테니 잘들 의논해서 진행시키도
록하시오..』.

실상 밥줄이 떨어진 구군사의 수효는 수천명에 달했다. 청국군은 이들
이 몰려사는 왕십리와 이태원 일대를 쑥밭으로 짓밟고 군란 가담자라하
여 10여명을 붙잡아 포도청에 넘겨 처형시켰으니, 이들의 원한이야 뼈에
맺혀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의 거개를 대원군편으로 보아야 한다.

박영효의 건의중엔 구군사의 일부를 구제하자는 뜻도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