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있던 TV가 어느날 안방으로 옮겨진다. 손님이나 친척은 불러
들이지 않는다. 아버지 밥보다 수험생 밥을 먼저 푼다. 부부관계를 삼간
다. 관혼상제와 생일행사도 거른다. 온 식구가 숨을 죽이고 살아간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정상적인 가족이나 가정의 모습이 아니다. 하지
만 이제 새 학기를 맞아 자녀가 대입 수험생이 된 집들에서 흔히 빚어질
가정해체요, 가족파괴 현상들이다.
얼마전 가족문화학회가 펴낸 수험생 가족행태 보고서는 더욱 「기가
막힌」 사례들을 전한다.
음악을 못듣게 하려고 방안의 콘센트를 모두 막아버린다. 잠이 덜
오고 머리가 맑아진다는 약을 보약에 몰래 타 먹인다. 과외비를 대다 빚
에 몰린 어머니가 가출해버린다. 소외된 여중생이 수험생 언니의 바이올
린을 부수고 칼부림까지 한다. 한겨울 맨발로 바위에서 치성을 들이던 어
머니가 급기야 정신착란을 일으킨다….
가족성원들이 각기 지닌 고유기능은 무시된 채 아버지는 돈 버는 기
계, 어머니는 밥 해주는 기계, 수험생은 공부하는 기계가 돼버린다고 보
고서는 개탄한다. 아버지는 「수험전선 지휘관」인 어머니에게 결정권을 넘
긴 채 주변인으로 남아 소외와 무력감에 시달린다. 가족은 형체만, 빈 껍
질만 남는다.
능력개발이 대학교육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들 말한다.
대학이 아니라도 상향이 동 열망이 충족될 통로가 얼마든 있다고도 한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사람대접을 받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자고들 한
다. 「창의적인 신인간」이니, 「세계화를 주도해갈 새 세대」들이니, 말들은
많다. 하지만 뭇 가정에서 빚어지는 「수험수발 증후군」을 보면 모두 허울
좋은 말뿐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개발독재시대때처럼 교육을 개발도구, 대량생산
수단으로 보고 있다. 「미래의 신인간」들이 자아를 형성해갈 중고등학교때
인성과는 동떨어진 「기계」로 만들고 성적으로 인간서열을 매기는 편집증
에 빠져있다. 부모들은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비뚤어진 교육관을 부
끄러워할 최소한의 이성조차 잃은 것처럼 보인다. 편견과 연고주의에서
해방된 새로운 사회모럴에 맞는 인간 양성과는 거리가멀어도 한참 멀다.
대학에 가도 문제는 여전하다. 단지 「교육열」이라는 관성으로 달리
는 열차에 떼밀리듯 올랐다가 하차해보면 출찰구는 전혀 엉뚱한 곳일때가
적지 않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도록 「내가 갈 길이 이게 아닌데」를 되뇌
이며 연신 뒤돌아보며 사는 이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2000년대엔 대학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서 입시지옥이 사라질 거라
고 한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드물다. 아이를 갓 초등학교에 들
여보낸 초보 학부모들조차 벌써부터 막연한 걱정에 사로잡혀있다. 교육에
관한한 우리는 말만 무성할 뿐 위선에 찬 나라다.
< 오태진 ·문화부 생활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