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담한 내환(79) ///////////.
국왕은 하는수 없이 영의정 홍순목을 파직하고 영중추부사로 삼았다.
후임 인선을 서두르지 않고 대신 공석인 우의정에 김병덕을 임명했다.
좌의정은 김병국, 정승 자리 둘을 안동 김씨가 차지한 것이다.
이와함께 박영효에게 한성판윤을 제수했다. 임금의 사위는 실직을 하
지 않는 것이 관례인데, 그의 경우는 수신사의 공로가 인정되고,
또 인재가 부족하여 각별히 등용한 셈이다.
전임자인 심리택은 진하사로 임명돼 부사 민종묵과 함께 청국에 들어
갔다.
하직을 고하는 자리에서 국왕은
『전번에 조영하는 청국정부와 절충할 일이 많아 보정부까지 다녀오지
못했소. 이번 경들의 행차에서는 반드시 틈을 내어 대원위 대감을 뵙고
문안을 드리도록 하오.』간곡히 당부했다.
심리택이 머뭇거리자 국왕은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정사가 어려우면 부사라도 그리 하오.』
『분부대로 어김없이 거행하겠나이다.』
민종묵은 깊이 부북했다.
심리택은 대원군과의 해묵은 확집이 풀리지 않고 있었다.
대원군은 정권을 잡자마자 심리택과 그의 부친 의면을 잡아드렸다.
부자 모두 부정축재의 죄를 들씌어 종로에서 매를 때리고 조리돌린뒤
향리인 공주로 내쫓았던 것이다.
대원군이 퇴진하자 심리택은 다시 조정에 나와 두루 요직을 지낼 수
있었다. 국왕은 그걸 상기하고 심리택에게 껄꺼로운 소임을 면하게 한
것이다.
이즈음 조정 안팎에선 대원군이 곧 환국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
았다.
그것도 단순한 귀국이 아니라 조선의 척신세도를 누루고 국정을 쇄신
케 하기위해 대원군을 재등장시킨다는 것이었다.
국왕의 극진한 효심이 청국 황제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얘기도 퍼지고
있었다. 허긴 자식의 도리로 보더라도 국왕의 체통은 말이 아니다. 대원
군의 환국을 원하고 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척신들에겐 큰 위협이 아닐수 없다. 경상도 향반과 유림가운
데는 남인이 많고, 이들은 지금도 대원군을 지지하고 있다. 장안에도 찬
당들이 숨을 죽이고 재기를 노리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개화의 풍랑속에서 백성들은 갈피를 못잡고
술렁거리고 있다. 척왜 척양의 풍조는 겉으론 많이 가신듯하나 아직도
뿌리가 깊은 것이다.
심리택과 민종묵을 청국에 보내게 된데는 세도가들의 면밀한 계략이
숨어 있었다.
『국왕이 황제에게 대원군의 환국을 탄원한 것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지금 대원군이 돌아오면, 어떤 사단이 날지 아
무도 보장을 못한다. 조선정국의 안정을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
다.』.
청국정부의 요인들에게 조선의 실정을 알려주라는 묵시적인 소임을
받고 있었다.
기실 대원군에 관한 소문은 청국 조정안의 복잡한 권력투쟁과 맞물린
것이었다.
청국황제는 덕종 나이가 어려 효흠황태후가 수렴섭정을 하고 있었다.
황태후를 보좌하며 권세를 잡은 사람이 황제의 백부인 공친왕이였다.
이홍장도 공친왕 덕분에 북양대신으로 중용되고 있다.
공친왕의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정적들이 늘어났고 황태후의 마음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편 황제의 생부는 공친왕의 동생 순친왕이었다. 형의 권세에 치어
변변히 국정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황태후로서는 동정이 가고, 다루기도
만만해 보였다.
때마침 월남에서 청불사변이 일어나, 국지적인 전투가 벌어져 또다시
청국군은 일패도지의 망신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