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담한 내환(75) <<<<
민태호는 근거없는 모함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폭도들이 대궐을 침범하고 중전이 시해됐는데도, 도성으로 달려오지
않고 에 피신하고 있었으니, 사실상 대원군의 재집권에 동조한거
나 다름이 없다.』 이런 중상이 귀에 들어왔다.
민태호는 왕비의 피난을 주선하고, 장호원의 자기집을 은신처로 제공
한 민응식을 의심했다.
왕비의 환궁후, 민응식은 벼락감투를 쓰고, 전국의 보부상을 총괄하
는 혜상국 총판을 거쳐 좌영사에 올라 왕비의 총애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이같은 중상이 왕비에게 먹혀든데는 평소 대원군이
『그래도 민씨 성붙이 가운데선 태호가 그중 점잖다.』 했던 인물평도
영향을 끼쳤는지 모를 일이다.
왕비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국왕에게 말했다.
『본디 태호는 친자식 영익을 오라버니(승호)의 양자로 내놓는걸 좋아
하지 않았어요. 죽은 겸호가 간청하니까 마지못해 승낙을 했었지요. 대원
군이 대권을 잡게되자, 은근히 운현궁에 추파를 던진게 틀림없어.』.
『그건 중전의 오해요. 태호는 그럴 사람이 아니지.』
국왕은 껄껄 웃었다.
『모르시는 말씀, 전하의 은총을 믿고, 교만방자하게 구는걸 보세요.
죽은 규호나 겸호와는 달리 믿을수 없는게 태호인줄 아오이다. 사람이 줏
대가 없고, 바람부는대로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았소이까.』.
『하긴 강직한 사람이라고는 할수 없지.』.
『제가 장호원에서 지낼때, 왕비의 생사는 모르지만, 기왕 반포된 국상
을 치르지 않을수 없다는 말을 했다 하더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몰라도
어찌 저와 가까운 처지에서 그런 소리를 할수 있겠어요?』.
『국상을 독촉했다면 큰 죄가 아닐수 없소.』
왕비의 말에 끌려드는 것 같은 국왕이었다.
다음날 국왕은 홍문관 제학 김병시를 불렀다.
『군란을 전후한 민태호의 행동거조에 미심쩍은 혐의가 있다. 국상의
절차를 독촉하고, 빈전에서 곡을 하지도 않았다. 중전의 지친으로 그럴수
없는 일이다. 멀리 유배한다음 사약을 내릴 것이다.』하며 민태호를 유배
하는 전교를 짓도록 명했다.
경악한 김병시는 민태호와 자별하게 지내는 공조참판 겸 예문관 제학
에게 달려가,
『큰 일이 났소이다. 내가 직접 알리고 싶어도 전하의 분부를 받았으니,
그럴수는 없어요. 대감께서 알려드리시오.』 귀띔을 했다.
의 말을 들은 민태호는 지중추부사 김성근에게 부탁을 했다. 아
무리 다급할지라도 제발로 나다니며 구명을 간청할수 없는게 사대부의 체
면이다.
김성근은 밤중으로 우찬성 민영위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알렸다. 민영
위는 민영목과 함께 일가의 어른이고, 왕비를 여주 시골집에 뫼셨던 사람
이다.
이튿날 민영위는 급히 내전으로 들어가 왕비를 뵈었다.
『무슨 일로 아침 나절에 입궐하셨소?』
왕비가 묻자 민영위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사연을 말하오.』
왕비는 답답한듯 대답을 다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