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5월 글라이스틴-국무부간 비밀전문등 밝혀 ###
### 미지, "미 통제불능시 직접군사개입 검토" ###.
미정부는 80년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신군부가소요 진압을 위해
병력투입도 불사할 태세임을 알고 있었으며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대사를 통해 이같은 비상 계획에 대한 지지 입장을 장군
에게 통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미통상 전문지인 저널 오브 커머스의 톰 셔록 기
자가 미정보 공개법을 통해 대외 공개시킨 80년 5월 8일자(이하 미시
간) 비밀 전문 등에 의해 밝혀졌다.
커머스지는 이와 관련해 "미국은 한국의 진압을 알고 있었다"는
제목의 27일자 광주 문제 특집에서 "80년 5월 22일 소집된 의
한 회의에서는 사태가 통제 불능으로 악화될 경우 미국이 직접 군사
적으로 개입하는 방안도 아울러 협의됐다"고보도했다.
이 회의에는 당시의 "에드먼드 머스키 국무장관, 워런 크리스토
퍼 부장관, 리처드 홀브룩 차관보,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보
좌관,해럴드 브라운국방장관, 데이비드 존스 합참의장 및 스탠스필드
터너 장"이 참석했던 것으로 설명됐다.
커머스지는 이들 국무부 및 "미국방정보국(DIA)" 등의 비밀 문건
을 인용해 또 ▲당시의 크리스토퍼 국무부장관과 홀브룩 동아태담당
국무차관보가 관련미정책 결정을 주도했으며 ▲카터 행정부가 80년
5월 22일 광주시를 (한국 정부가) 재장악하기 위한 병력 추가 이동
(20사단을 지칭하는 것으로 설명됨)을 승인한 것으로 밝혔다.
이어 ▲워싱턴과 서울의 미관리들이 당시 장군의 대통령
의 긴급계획에 공수부대 투입이 포함돼 있음을 알고 있었으며 ▲미측
은 전대통령이 장기적인 정치변화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사태 수습을
위한) 단기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있음에 합의했다고 신문은 덧붙였
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로 긴급 타전한 80년 5월 8일자 비밀
전문에서 "(한국) 정부가 필요할 경우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질서를
유지한다는 결의에 차있다"면서 "그러나 이 경우 엄청난 위험이 유발
될 수있음도 잘 깨닫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 등과 (미대사관측이) 나눈 대화들에 관한 오
늘자 별도 전문들을 주지하라"고 상기시키면서 " 및 최광수 청
와대비서실장과 내일 각각 만난 후 이번 사태에 관한 본인의 생각을
추가로 보고하겠다"고 덧붙였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그러나 "법과 질서유지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할경우 (사태 진압을 위해) 경찰에 군을 가세시킨다는 한국 정부
의 비상 계획들에 미정부가 반대한다는 여하한의 시사도 이들 두 사
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전문에서 밝혔다.
는 크리스토퍼 부장관 등의 이름이 언급된 같은 날짜의
비밀 답신에서 "우리는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비상
계획들에 반대해서는 안된다는 점에 합의했다"면서 "그러나 이같은
법적용이 자제 속에 신중하게 이뤄지지 않을경우 그 위험이 급증할
것임을 귀하(주한대사)가 전(두환)과 최(규하)에게 주지시켜야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측은 27일 광주 문제와 관련해 "지난 89년 공개한
미정부 성명서외에는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다"고만 밝혔다.
미정부는 당시 "80년 5월 대한민국 광주에서 일어난 제반 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성명서"란 제목이 달린 모두 32쪽 분량의 문건을
전달한 바있다.
미정부와 글라이스틴 전대사 및 80년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을 지
낸 존위컴 예비역 대장은 그간 대외적으로 `미국이 광주 문제에 직접
연계되지 않았다'는 입장으로 일관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