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동독은 체제멸망과정에서 인류역사상 최고의 「소프트랜딩」(연
착륙) 모습을 보여주었다. 단 한건의 유혈사태도 없이 서독의 체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김정일 처가 탈북하고 평양 심장부에서 총소리가
나는 사태에 우리 정부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15일의 통일안보조정회의는 이례적으로 총리가 주재한데다 예정시
간을 훨씬 넘기는 마라톤 회의였다. 이자리에서는 북한체제가 소프트
랜딩보다는 결국 「하드 랜딩」 또는 「크러시랜딩」(충돌)으로 갈 가능성이
실감있게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핵심계층의 탈북사태는 막을
수 없는 일로 보인다.

북한정권도 나름대로 「국제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
실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기를 쓰고 나진-선봉을 개방하려 한다. 이
지역을 「미니공화국」으로 선포할 정도이다. 그러나 북한의 「국제화」는
「탈북화」로 이어지고 있음이 요즘의 사태가 실증하고 있다. 그렇다고
탈북을 막기위한 「쇄국」은 스스로 목을 죄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북한은 어느 쪽으로 가든 체제와해의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 판단이다. 문제는 와해의 속도와 방법일 뿐이다. 미국
은 북한의 소프트랜딩 유도를 명분으로 대북지원을 주장한다. 우리정
부라고 해서 한반도위를 날고 있는 고장나고 기름 떨어진 비행기가 그대
로 추락하기를 원할리는 없다.

15만톤의 쌀을 주고 남북경협을 추진하는 것도 이를 막기위한 일환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와 비교해 본다면 우리
의 소프트랜딩은 현재로서는 아무래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동
독에는 소련군 30만이상이 주둔하고 있어 17만 동독인민군을 완전히 장악,
통일과정의 예상되는 반발을 철저히 봉쇄할 수 있었다.

동독군의 장성은 단한명의 예외도 없이 전원 예편됐지만 아무 반발
도 없었다. 소련이 독일통일에 기여한 최대의 공로이다. 북한체제의
붕괴 또는 통일과정에서 1백20만 북한인민군은 누가 어떻게 통제할 것인
가.

동독국민들은 공산체제 붕괴후 자유로운 총선을 통해 서독과의 통
일을 희망했다. 동서독간에는 분단시에도 연간 수백만명이 서로 오갔
고 상대방 방송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체제비교가
끝난 상태였다. 무엇보다 동독주민들은 서독주민들에게 호의를 느끼고
있었다. 북한주민들은 현재 남녘동포들에게 호의를 갖고 있고 체제
붕괴시 이의없이 한국과의 통합을 원할 것인가. 독일 통일과정에서 가
장 돋보인 것은 서독의 동독 유도전략이었다. 이는 미-소-영-불 등과
의 완벽한 공조하에 이루어졌다. 특히 독일의 경제력을 이용해 소련
을 통일지지로 돌아서게 만드는 과정은 외교의 극치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17년째 외무장관을 맡고있던 겐셔의 외교술은 「겐셔리즘」으로
호칭이 격상됐다. 현재 우리의 외교환경과 역량은 미-일-중-러를 한반
도 통일지지 세력으로 바꿀 수 있을 정도인가. 당장은 소프트랜딩 유
도가 어렵다면 충돌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이라도 철저히 강구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