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아이들이 도중하차함에 따라 요즘 가요계의 최고 실력자로
남은 쪽은 라인음향의 김창환이사(34)이다. 그는
등의 수퍼스타를 키워낸 스타제조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의 공식 직함은 한 음반이 기획 단계에서 출반될 때까지의 전과정을 책
임지는 가요프로듀서. 국내에서는 그가 가요프로듀서의 개념을 처음 도
입했다.
『가요프로듀서란 음악에 색깔을 입히는 직업입니다. 예전처럼 가수
가 노래만 잘해서는 판이 팔리지 않아요. 요즘은 음악을 어떻게 포장하
느냐에 따라 성공여부가 결정되는 추세입니다. 가수보다는 제작자의 중
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죠.』.
「핑계」 「잘못된 만남」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상상 속의 너」 등의
그야말로 범국민적 히트곡들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산울림의 김창
완이 놀라운 변신을 했구나』라고 말하곤 했다. 그가 언론의 인터뷰를
가급적 피해 온 까닭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물론 과 김창환은 전
혀 다른 인물이다.
가요계의 숨은 황제, 그는 자신의 성공의 비결을 무엇 때문이라고
여길까? 『너무 앞서지도 않고 그렇다고 뒤처지지도 않는 시대감각이 대
중의 구미에 딱 맞아 떨어지는 음악을 만든 비결인 것 같습니다. 경제
성장과 정치적 안정 덕분에 국민들이 의식있고 무거운 노래보다는 가벼
운 댄스음악을 선호하게 된 것도 성공의 한 이유라고 봅니다. 또 저의
노랫말이 쉽게 가슴에 와닿는다는 말도 자주 들었습니다.』.
지난 91년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과 동반 데뷔한 이래 그
에게는 언제나 성공만이 함께 했다. , . 이론의 여지가 없
는 수퍼스타. 은 국내에 처음으로 음반의 밀리언셀러시대를 열었
던 주인공이고 의 3집은 2백80만장이라는 영원히 깨질 수 없는
음반판매기록을 세웠다. 는 음악성과 대중성을 조화시킨 댄스음
악 그룹으로 가요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놓고 있다. 「민들레 홀씨
되어」 이후 근 10년간 대중들로부터 잊혀져 왔던 을 한국의 도나
섬머로 변신시킨 것도 그였다.
더이상 국내에서 「가요계의 황제」 소리를 듣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판단 때문일까? 그는 96년을 「세계진출 원년의 해」로 선언했다. 국내에
서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무대에서도 김창환신화를 창출해보겠다는
것이다.
김씨가 세계 진출 1호로 내놓은 상품은 바로 이다. 가창력과
유창한 영어실력을 겸비한 이야말로 국제 무대에 올리기에 적격
이었다고 한다. 은 지난 해 국내에서 「투나잇 이스 더 나잇」이란
댄스곡으로 사랑받았던 독일 그룹 르 클릭의 래퍼 마이크 로메오와 함
께 그룹을 결성해 그의 히트곡들을 영어로 부를 예정이다. 빠르면 올
4월쯤 한국과 독일에서 동시에 공개될 계획이다.
『어려서부터 를 석권하는 것이 큰 꿈이었습니다. 올해는
그 전초전으로 유럽시장을 공략해 볼 생각입니다. 지난 연말 독일을 방
문해서 그동안 제가 만든 곡들을 들려줘 보았더니 감탄을 하더군요. 성
공을 자신합니다』.
「스타제조기」 「댄스음악의 연금술사」 「가요계 기록 메이커」 등 화려
한 수식어가 뒤따르는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아 왔을까? 예술 창작을 하
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그도 이색적인 인생을 살아 왔다. 경희
대 공예과에 잠시 적을 둔 이후에는 오로지 음악과만 인연을 맺어 왔다.
10여년 동안 나이트클럽의 DJ일을 해오면서 조금씩 조금씩 귀를 트이며
음감을 익혀갔다고 한다. 10년 동안 나이트클럽에서 생활을 해보니까
지금은 스튜디오에 앉아 있어도 젊은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감이 올 정
도라고 한다.
&&& " 이 10대만의 음악입니까?" &&&.
김씨가 좋아하는 음악은 흑인음악. 댄스음악의 황제가 댄스음악보다
솔음악을 좋아한다는 뜻밖의 사실에 대해 그는 『모든 댄스음악의 밑바
탕에는 흑인음악이 깔려 있다』는 말로 답했다.
김창환의 주위에는 실력있는 음악인들이 많이 모인다. 이른바 김창
환사단. 김창환이 분신으로 생각하고 있는 천성일(26)은 의 멤버
이며 작곡가다. 섬세한 성격을 바탕으로 의 「그대와 함께」 노이
즈의 「내가 널 닮아갈 때」와 같은 R&B 발라드를 주로 작곡해왔으나 박
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이브의 경고」처럼 신나는 댄스넘버에서
도 재능을 발하고 있다. 김창환사단에서 편곡과 함께 건반연주를 주로
맡는 김우진(27)은 음대출신이다. 졸업 후 클래식과 대중음악중에서 하
나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그는 주저없이 대중음악을 택했다. 계
명만 담긴 데모테이프를 김창환씨로부터 넘겨 받으면 반주를 넣는 작업
을 맡아 하고 있다.
김창환사단이 만들어낸 댄스음악에는 독특한 비트가 인상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이 리듬을 입히는 작업은 김창환씨와 김영수(29)
가 연출해 내고 있다. 록그룹 「비트」에서 드럼을 쳤던 그는 라인기업에
입사한 94년 8월 이후에는 컴퓨터음악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안무를 맡
고 있는 강원래(27)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댄서이다. 이미 고
등학교 때 모나이트클럽이 개최한 춤 경연대회에서 선배들을 제치고
1등으로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당시 2등은 와 아이들의 이주
노 양현석이 차지했었다.
그에게는 그의 음악이 지나치게 감각적이고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항
상 있었다. 또 10대 위주로 가요계가 굴러 가게 만든 장본인이란 비난
도 나오곤 했다. 이에 대해 그는 『 의 음악의 팬이 어디
10대들 뿐이었습니까? 승훈이나 건모가 국민 가수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음악에 대중성과 함께 우리 고유의 정서도 실려 있었기 때
문에 가능했지 않을까요?』 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