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슬픈 언약식 (3) %%%.

"금요일 아침, 그곳에서 기다릴게. 새가 올 때까지...".

아버지 어머니에겐 그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고 말했다. 성인이 된
다음 어른들에게 처음으로 가장 큰 거짓말을 했다.

비록 며칠 사이의 일이지만 얼마나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고 또 그날을 준비했던 것인지 모른다. 함께 여행을 떠나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을 스스로 감당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11년전, 그날을 생각하며 그녀는 소파에 앉아서도 짙게 어둠이 몰려
온 거실 쪽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날밤 어느
산장에서 창문을 열고 바라본 깊은 산 그림자를 그녀는 잊을 수가 없다.

달도 없는 밤, 계곡을 지나가는 바람 앞에 별들만이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왜 성급한 생각을 자꾸 하게 되었는지 몰라".

함께 창문 앞에 서서 창문을 열고 산그림자를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그녀는 그가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스물세
살된 여자의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어야 할 말이라는 것도.

"성급한 게 아니야, 정우씨".

나란히 서서 산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그녀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가 서두르는 것은 아닐까. 이 여행 또한 성급한 것은 아닐까. 알게 되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어라고 말할까.

아니, 그전에 서울로 올라가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을 피하지
않고 예전처럼 어리광을 피우며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런데도 그가 그렇게
말할 때 그녀는 이제는 자신이 그의 마음을 감싸주어야 한닥 생각했다.
그럴 나이가 되었다고. 이제 나는 스물세살의 어른이니까...

당시로선 더없이 무겁게 느껴지던 나이였는데, 추억하듯 돌아보면
그게 바로 우리 사랑의 가장 꽃다운 시절이 아니었는가 싶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에 와서도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은밀함과 아름다움들...

"오늘 힘들게 나왔다는 걸 알아".

마주 서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도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그럴 때 그의 눈빛은 언제나 무엇엔가 깊이 젖어있는 듯
느껴지곤 했다. 그가 날 사랑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늘 정우씨 옆에 있을 거야".

이젠 정우씨 하자는 대로 할 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