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양재학원 설립(38년), 최초의 디자이너 모임인
「대한복식연우회」 창립(55년), 스타일화의 첫 도입(61년), 첫 국제패
션쇼개최(63년), 최초의 차밍스쿨 운영(64년), 최초의 패션전문 잡지
「의상」 창간(68년)….
「디자이너」란 말조차 없었던 시절부터 이땅에 「패션」의 씨앗을
뿌리고 가꿔온 최경자씨(85·국제패션디자인연구원 이사장). 지금부
터 58년전 함흥에 양재학원을 세운 이래 앙드레김, 오은환, 이신우,
트로아조, 하용수, 이광희, 홍미화씨 등 내로라 하는 일급 패션디자
이너를 키워낸 「패션교육자」 최씨가 최근 자신의 「패션인생」을 정리
한 회고록을 펴냈다. 「날개를 만드는 사람들의 어머니」(명진출판 간)
는 도전과 개척으로 가득 찬 그의 개인적 인생역정을 통해 우리나라
의 패션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소상하게 보여준다.
『패션을 공부하는 학생들조차도 우리나라에 어떻게 전문모델이
생겨나고 스타일화가 시작됐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글을 쓰게 됐어요.』.
늘 새로운 일을 벌이느라 바빴던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고 싶
기도 했고, 그저 「쟁이」들이 하는 것으로 알던 「양장」이 어떻게 지금
처럼 예술성을 인정받는 「패션」으로 자리잡게 됐는지 가르쳐 주고 싶
었다고 그는 말한다.
3백60면에 이르는 그의 회고록은 함남 안변에서의 어린시절과
루씨여자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음악 공부를 하겠다고 유학을
갔다가 고향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피아노를 팔아 양재를 배우게 된
경위, 출산후 사흘만에 강의를 해야 했던 함흥양재학원 시절, 명동에
「국제양장사」를 열어 이름을 날리던 이야기, 당시의 유일한 여성잡지
「여원」에 패션화보를 담당하던 일,60년 미국과 유럽, 등의 패션
계를 돌아보고 난 뒤 국제복장학원을 세워 패션교육에 전념하게 된
배경 등을 담담하게 엮어내고 있다.
『지난 날을 정리하고 보니 당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맞는 방향
으로 일을 벌여온것 같아요. 다만 패션대학을 세우겠다고 부지 7천평
까지 마련해 두었다가 좌절된 일이 가장 아쉽게 생각됩니다.』.
여성이 독립하려면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신념에 양재교
육에 힘을 기울여 온 것도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요즘도 매일 아침 9, 10시면 출근, 오후 5시까지 근무하며 학생
과 교사들을 독려한다는 그는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그저 많이 보
고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오는 3월초쯤 국제디자인연
구원 개교일을 맞아 출판기념회와 그가 이제까지 길러낸 제자 5만명
중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공동 패션쇼도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