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스 산맥에 살고 있는 유목민족 체첸의 역사는 대 항전의
역사였다. 17세기부터 제국의 카프카스 정복이 시작되자, 산발적
저항을 거듭하던 체첸인들은 1785년 우수르마를 지도자로 하여 본격적인
대 항전을 시작한다. 1817년 의 본격적 침공으로 시작된 대
러항전은 1859년까지 진행되나, 끝내 에 정복당하고 만다. 이 전
쟁을 체첸인들은 50년 전쟁이라고 부르며, 당시 체첸 지도자였던 이맘
샤밀을 영웅시하고 있다. 이 전쟁으로 체첸은 인구의 절반을 잃었다고
한다.
체첸은 1917년 볼세비키 혁명 이후 다시 독립의 깃발을 내건다. 볼세
비키의 민족해방논에 고무된 체첸인들은 백군 사령관 데니킨 장군에 대
항, 적군과 함께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그 결과 테르스카야주의
일부였던 체첸은 체첸 자치공으로 승격되는 등 일부 자치권을 쟁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완전독립을 바라는 체첸인들의 저항은 끊이질 않았으며,
그 결과 1944년2월 20만 소련군의 전면침공을 당하게 된다. 체첸인의 친
독 게릴라전 가능성에 대한 예방조치였다. 소련군은 50만 체첸인을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절반이 넘는 인구가 얼어죽고
굶어죽는 민족비극을 맞이한다. 지금도 「잊지 말자! 1944년!」이란 구호
가 체첸에서는 계속되고 있다.
1957년 체첸인들은 스탈린 사후 잠시 해빙된 분위기를 타고, 체첸 땅
으로 되돌아 오는데 성공한다. 산발적인 저항을 계속하던 체첸은 1990년
11월 독립선언문을 채택한 후, 본격적 독립운동을 재개한다. 91년 소련
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그 해 11월 체첸공화국의 완전독립을 선포하였다.
91년에서 94년까지 3년간 대치상태를 보이던 와 체첸은 94년
12월11일 15만 군이 전면침공함으로써 전면전으로 돌입한다. 러시
아는 초기 반두다예프 체첸 대통령 세력을 지원, 친러정권을 수립하려
하였으나, 94년 11월 말 반두다에프 진영의 쿠데타가 실패하고 그 배후
조종이 임이 입증되자, 계획을 바꿔 전면 무력침공으로 나선 것.
병력과 화력의 압도적 우세에도 불구, 군은 수도 그로즈니시를
함락시키는데만 한달 이상의 시간을 허비하는 등 개전 초기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로즈니시 함락 이후, 체첸군은 남부 산악지대로 이동,
현재까지 끈질기게 게릴라전을 계속하고 있다.
측은 95년 12월14일에서 17일까지 3일간 진행된 선거에 50%
이상이 참여, 90%의 득표로 친러파 도쿠 자브가에프가 체첸정부 수반으
로 당선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체첸 측은 이를 선거조작이라고 맞서고
있다.
체첸인들은 이번 전쟁을 17세기부터 시작된 「3백년 항전」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 또 현지 야전 지휘관들도 『게릴라와 민간인을 구
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시
사하고 있다.
19세기의 대문호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시 「체첸인」.
『그들의 신은 자유요, 그들의 법은 전쟁이다
그곳의 우정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곳의 복수는 더욱 확실하다
선에는 선으로, 피는 피로 사랑이 강한만큼 증오도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