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문화-변화 적극 수용해야 //////.
정직한 예언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모든게 잘못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투자와 노력을 김빠지게 한다는 비난을 들을
것이요, 모든게 잘 될 것이라고 말한다면 나태와 자기만족의 정신이 깃
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찬란하지도 않고 비참하지도 않은 상태
로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야할 것이다. 사실 이 둘
사이가 통계적으로 가장 개연성이 있을 것이다.
이 둘 사이에 나는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를 분리해 보겠다.
이것은매우 힘든 일이다. 가령 문화를 예로 들어보자. 오랫동안 경제학
자들은 문화가 고정돼 있는 것이라고 간주했고, 문화가 발전에 저해될
경우 발전이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30년전만 해도 전문가들은 유교에
대해 그렇게 적어놓았다. 오늘은 그 반대로 쓰고 있다.
문화가 바뀌었는가. 그렇다. 아시아에서 유교적 가치관은 다른 곳
에서 유입돼 온 개인주의 혹은 아시아에 이미 존재해 있었으나 잘 인식
되지 않았던 개인주의 등 다른 가치관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패퇴했다.
변화의 내용은 가치체계들 사이에 경쟁이 확대되어 왔으며 앞으로
도 계속변할 것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시아국가들에서 정치권력이
나 종교권력들은 유일 가치체계의 독점권을 행사하고자 했다.
유교, 신도, 마르크스주의 등. 발전은 이러한 독점적 유일사상이
붕괴하고 문화-정치-종교적 모델 사이에 경쟁관계가 복원됐을 때 비로
소 시작됐다. 아시아에서 발전의 문화적 조건은 이런 의미에서 17세기
유럽의 상황에 견줄 수 있다. 가톨릭과 신교 사이 그리고 왕과 ,
황제 사이의 경쟁이 비판정신과 기업정신을 동시에 발현하도록 허용했
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진보의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한 것은 지배적
유일 사상의 단절이다. 여기서 교훈을 이끌어내야 한다.
오늘날 아시아에서 내가 염려하는 것은 몇몇 정치 엘리트들이 자
신들의 역사를 거꾸로 읽고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그릇된 해석으로부
터 발전에 역행하는 독점적 신모델을 강요하려고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
다. 이러한 독점에 대한 유혹은 「아시아적 가치」라고 하는 인위적 어휘
에 표현돼 있다. 마치 그것은 보존하고 재창출해야할 성장의 기적적 원
천이라도 된다는 듯이 여겨진다. 사실 이러한 아시아적 가치는 윤곽이
흐릿한 것이다.
이것들은 민족적, 종교적 그리고 극도로 변화가 심한 정치적 경험
들의 축적된 바탕위에 인위적으로 구현돼 있다.
나는 정치적 경제적 엘리트에게 무엇보다 앞서 말한 아시아적 가
치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도록 조장하고 있는 음모를 목격
하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기득권을 차지한 엘리트들은 이 가치관들을
자신들만 정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발전은 엘리트들의 끊임없는 교체, 가치관 사이의 경쟁 그
리고 자기비판의 의식 위에 기초하고 있다. 최근 나는 한국을 방문하고
나서 아시아국가들중에 이러한 자기비판의 의식이 가장 빨리 발전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걱정하
기도하지만 사실은 가장 즐거워해야할 일이다. 자기자신, 민족적 모델,
다른 곳에서 유입돼 온 모델 등을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은 무관심을 물
리치고 진보를 향할 수있는 가장 훌륭한 보증인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진보를 싫어하고 옛 질서를 선호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권리다. 그러나 진보를 방해하는 가치관들을 옹호하면서
진보를 권장하는 일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목적
과 우리가 처방하는 방편이 일치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진보를 애호하는 사람들에게 이 일치란 민주주의와 자유경제를 선
호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완전하고 우회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민주주의와 시장이 엘리트와 사상의 교체
를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진보앞에서 망설이는 사람들은
시장이나 민주주의를 좋아할 이유가 없다.
진보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 그리고 그것을 동반하는 제도들을 정
확히 파악해야만 한다. 이 두려움은 자신들의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다
른 사람들의 상황에 아무 걱정도 하지 않는 부류들이 개인적인 혹은 이
기적인 이유로 갖게 되는 것이다. 진보에 대한 두려움은 한국의 문화적
혹은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상실하지 않을까하는 염려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이 염려는 진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사회의 미국화에 도달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다. 또 많은 징후들이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현대화와 미국화를 자주 혼동하고 있다. 소비
풍조 혹은 모든 현대사회에 공통적인 개인주의 등은 미국 때문이다. 현
재 진행중인 변화의 가장 정확한 관점은 「복수-아이덴티티」란 말로 정
의돼야 할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우리는 한 장소, 한 종교, 한 문
화에 속해 있었다. 그후로 우리는 여기 저기에 속하게 됐고 우리의 기
원을 이루는 문명과 동시에 다른 문명에 속하는 부분들이 혼재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본래적인 아이덴티티를 상실하지 않으면서 동시
에 다른 여러개의 아이덴티티를 취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