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는 조선시대 문신이자 소설가인 서포 김만중을 96년도 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구운몽', `사씨남정기'등의 대표작을 남긴 김만중은 숙종때 소설
문학의 선구자로 가사문학의 송강 정철, 시조문학의 고산 윤선도와 더불
어 3대 고전문학가로 꼽힌다.
진보적 사상의 소유자였던 그는 전문이 한글로 된 `구운몽'과 같은
국문소설의 집필활동을 통해 우리 말과 글에 대한 국자의식을 강조, 허균
과 조선후기실학파 문학을 잇는 가교역할을 했다.
1637년 강화에서 출생한 김만중의 본관은 광산, 자는 중숙, 호는
서포, 시호는 문효이다.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 충렬공 익겸의 유복자로 태
어났으며 광성부원군의 아우, 숙종의 초비인 인경왕후의 숙부이기도 하다.
홀어머니 윤씨의 희생적인 가르침속에 성장한 김만중은 1665년 정
시문과에 장원급제, 정언.지평.수찬.교리를 거쳐 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및 삼남지방의 진정득실을 조사했다.
이듬해 겸문학, 헌납을 역임하고 동부승지가 되었으나 74년 인선대
비의 상복문제로 서인이 패배하자 관직을 삭탈당했다.
1679년 예조참의로 관계에 복귀한뒤 공조판서, 대사헌을 지냈으나
사헌부의 조지겸등이 환수의 청을 하자 이를 비난하다 체직됐다.
3년후인 1686년 대제학이 되었다가 다시 장숙의일가를 둘러싼 언사
에 연루돼 선천에 유배됐다.
1년이 지나 풀려나기는 했으나 3개월후 박진규 이윤수등의 탄핵을
입어 남해에 위리안치됐다.
이같이 유배에 처하게된 것은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 민씨의 여화
때문이었다.
`구운몽'은 남해에 유배되어 자신에게 지극한 정성을 쏟았던 어머
니를 위로하기 위해 하루밤에 써 내려간 작품으로 전해진다.
1692년 유배지인 남해의 적소에서 56년을 일기로 생을 마감했으며
그로부터 6년후 관직이 복구되었고 1706년에는 효행에 대해 정표가 내려
지기도 했다.
문체부는 `서포 김만중의 달'을 기념하는 학술, 강연 행사를 국내
외에서 다양하게 펼칠 계획이다.
△1월18일(강화군청 회의실):( 국학연구원주최) △1월19일( 국학연구원강당)-
(//) △1월3-31일(국립중앙도서
관 1층 로비)-관련책자 전시회 △1월30일(인도 네루대학)-구운몽의 배
경지인 인도에서 구운몽과 김만중 문학소개행사(한.인문화연구원,
국학연구원 공동주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