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해 가을의 민들레 (1) ====.

길게 전화벨이 울렸다.

두번, 세번......

정우는 그것을 그대로 둔 채 소파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아직 잠이 든 건 아니었다. 한 번만 더 울리면 저절로 자동응답 메시지
가 나갈 것이었다.

사무실에 나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한나절 같은 시간에야 그는 이제
막 밤샘작업을 마치고 책상에서 내려와 소파에 누운 것이었다. 그래서 사
무실 소파도 보통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수평 소파가 아니라 앉을
때보다는 누울 때 편하도록 만들어진 이브닝 소파를 놓아두고 있었다.

혼자서는 침대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넓이도 다른 소파 보다
넉넉했고, 쿠션을 받치고 누울 때 자세가 편하도록 머리쪽이 다리쪽보다
조금 더 높은 듯한 기분을 주었다. 그는 일을 하다 쉴때에도 그곳에 내
려와등을 기대고 앉기보다 눕길 좋아했다.

또 독촉전환가.

네번째 벨이 울릴 때 그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이번주까지 끝내 주기로 한 것이었다. 계절 상품
을 기획할 때는 한 계절도 아닌 두 계절을 앞서 살아야했다. 의류 디자인
업계가 겨울에 다음해 여름옷을 준비하고 그 여름이 오면 또 겨울 옷을 준
비하듯 화장품이라는 것도 그랬다.

이번에 그가 맡은 일은 다음해 여름 화장품의 용기와 그것을 담는 포장
디자인이었다. 담당자는 포장과 용기에서부터 시원하다는 느낌, 깨끗하다
는 느낌을 주어야한다고 말했다. 일을 맡은지도 한달이 거의 다되어 가고
있었다. 틈틈이 담당자들이 찾아왔고, 또 그가 저쪽회사의 디자인실을
찾아가기도 했다.

마지막 벨이 울리고, 자동으로 메시지가 연결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정우입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이어 삐이하는 신호음 뒤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월간 월드의 최기잡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를 했는데 오늘도 안계시네요. 오후에 다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아
니면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는 대로 제게 전화를 주시든가요. 이쪽 전화번
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