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담한 내환⑦ ((((.
가령 이때 서울에 몰려든 유생을 5백정도로 친다면, 당시 서울의
인구가 20만, 지금의 천만은 50배가 되므로 2만5천이란 엄청난 수효이
다. 말하자면 그럴 지경인 불안과 충격을 주었다는 얘기이다. 물론
모두가 한날 한시에 돈화문 앞에 모였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 상소문은 동공이곡이었다. 그중에서 강원도 유생들 것이 가
장 이목을 끌었다. 홍재학은 화서 이항로의 제자일뿐 아니라 실상 문
장을 지은 사람이 최익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암 김평묵이라는 소
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
『…정조, 순조, 헌종의 3성께서는 위정척사의 대업을 성취하셨으
며 금상 등극이후에도 이 대업을 계승하여 흉악한 오랑캐들을 물리쳤
나이다. 오늘에 이르러 사설이 조정에 가득차 왜양과 교린통상하려는
움직임이 날로 뚜렷해지고 있사오이다. 묘당은 왜양이 한통속임을 아
는지 모르는지, 왜국과 조약을 맺고 경사에서 지척의 거리인 제물포에
개항장을 열 것을 허용하였나이다. 이것이야말로 조종의 성업을 훼손
하는 일이며 우리나라를 지탱해온 의리와 명분은 이제 땅에 떨어졌나
이다.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땅위에 피를 토하지 않을수 없나이다.
그 황모의 사의 책자로 말하면 조선의 벼슬아치가 남의 이름을 칭탁하
여 지어낸 것이오이다. 이같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주화매국 하려
는 자는 두목을 극형에 처하고, 부화뇌동하는 자는 조정에서 내쫓아야
할 것이오이다. 또한 통리기무아문이란 대체 무엇이오이까. 오랑캐와
상종하고, 오랑캐를 끌어들이기 위한 관청이 아니오이까. 통리기무아
문을 당장 폐하시고 3군부를 부활해야 할 것이며, 내탕금을 내려서라
도 군사들의 급료를 후하게 해야 할 것이오이다. 전하께서 성심을 발
분하시어 대의를 굳게 지키고 매국의 신료들을 깡그리 없애지 않는다
면 사악한 요기가 3천리 강토를 덮어 공맹의 대의는 날로 쇠퇴하는 반
면, 사람의 예의는 버림을 받고 집마다 강상이 무너져 내려 마침내 종
묘사직이 위태롭게 될것이 눈에 선하나이다. 전하께서는 망설이지 마
시고 결단을 내리소서.』.
경기도 유생들의 상소는 이에 더하여 봉조하로 뒷전에 물러난 이
유원을 겨냥하고,
『청국의 실권자 이홍장과 은밀히 상통하고 이홍장의 앞잡이 노릇
을 하였나이다. 연미국이란 말이 까닭없이 나온 것이 아니며, 이홍장,
이유원, 김홍집 등으로 이어지는 모사임이 분명한즉 전하께서는 저들
과 같은 간신들을 물리치고, 충신을 등용하소서.』 하며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꼴로 만들었다.
연일 기무아문 당상이 회동하고 이최응댁에서는 핵심인물들이 밀
의를 거듭했다. 척신들의 방책은 강경과 온건의 양수를 동시에 쓰는
것이었다. 그중 영향력이 큰 홍재학을 범상부도로 잡아들여 혹독한 고
문을 한다음 지체없이 서소문밖에서 능지처참형을 집행하고 가산을 몰
수했다. 동시에 상소문을 초한 김평묵도 의금부에 하옥시켰다가 먼 섬
으로 유배했다.
영남만인소의 강진규와 이만손에 대해서는 국왕이 감사의 은전을
베풀어 다른 소두들과 함께 각각 귀양을 보내는데 그쳤다. 이와함께
이유원을 거제에 위리안치시키고 김홍집은 수원 향리로 내려보냈다.
김평묵은 의금부의 심문에서 영남유생들에게 격문을 보내 선동한
사실이 탄로나기도 했다.
『…영남 만인소 베낀 것을 읽어보니 과연 퇴계선생의 전통이 면
면히 이어지고 영남 선비들의 기개가 살아 있음을 알게되어 춤출듯이
기뻤소이다. 나는 늙고 병들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지만 집사여러분
께 큰 기대를 걸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