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거리는 등불(42) ====.

대원군의 환갑을 축하하는 진상물이 운현궁에 답지했다. 전에도 잠깐
적었지만 대원군은 뇌물과 토산물을 분별하여 돈이나 금은 붙이는 일절
받지 않았다. 은그릇 한벌을 몰래 운현궁 안채에 보냈다가 뎅강 목이 날
아간 수령도 있었다.

그 뒤로는 사람들이 운현궁의 관행을 익히 알게되어 토산물도 값진
것은 피하게 됐던 것이다.

토산물이라해도 전국의 방백-수령들이 거의 빠짐없이 달구지나 바리
짐으로 실어 보내니, 곳간이 모자라 중문밖 뜰안에 부리게해서 거적떼기
같은 걸로 덮어두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궁안에서 쓸만큼 떼어놓고 짐이 당도하는 즉시로 가난하게 사
는 지인이나, 동네사람들에게 나눠주기에 바쁜 것이다.

이최응댁과 너무나 두드러진 대조가 되었다. 일단 들어간 물건은 도
시 문밖으로 나올줄 몰랐다.

아침마다 이최응은 열쇠뭉치를 손수 들고 즐비한 곳간 문을 열고는
진상품들을 챙겨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는 것이었다. 쇠
고기와 생선 썩는 냄새가 온동네에 진동한다고도 했다.

영의정 이최응의 그런 시늉을 기막히게 흉내내는 벙어리가 있었다. 양
반집 사랑채 마당같은 데서 한두판 놓고는 술값깨나 좋이 받아간다. 대
원군은 나도는 소문이 하도 딱하고 창피스러워, 사실 여부를 알아볼 마
음조차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집안 사람외엔 하객을 받지 않는다. 착오가 나지 않게 단단히 일러
두어라.』.

많은 벼슬아치들이 안도의 한숨을 토했을 법하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의 고민을 덜어주었기 때문이다.

당일 아침, 보련이 대취타에 맞추어 돈화문을 나와, 운현궁으로 거동
했다. 앞뒤를 일단의 기마대가 초위하고 보련 주변은 내시와 별감들이
에워 쌌다. 좀 떨어져 대신들의 교자행렬 시종들은 보행으로 따랐다. 모
처럼만의 볼거리라 추운 날씨에도 구경꾼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원군 내외는 솟을 대문밖에 나가 국왕을 맞았다. 역시 왕비는 따라
오지 않았다.

『안에서는 몸이 좀 불편해서요.』 국왕은 변명하듯 말했다.

『듣고 있어요.』 대원군의 대답.

국왕은 곧장 안채 내실로 인도되어 잠시 쉬었다. 교자상을 붙여 회갑
상을 차렸는데 접시에 괸 떡이나 실과의 높이하며, 음식의 구색하며 웬
만한 양반집 잔치상보다 도리어 수수했다. 무언중에 국왕을 간하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먼저 좌정하시지요.』
전날, 도승지 이재완이 왔을때 세세한 의례를 정해 놓은 것이다.

대원군 내외가 자리에 앉자 국왕이 먼저 큰 절을 올렸다. 내외도 머리
를 숙여 맞절을 했다. 그런 다음 국왕은 술잔을 두차례 바쳤다. 이 심부
름은 대전 상궁이 맡는다.

『아버지의 환갑을 축하하오며, 두분께서 만수무강 하시기를 바라옵니
다.』
『전하께서 친히 왕림해 주시니, 이 아비의 큰 기쁨이요, 집안의 생광
이오이다』
대원군도 정중하게 대답했다.

『곤전께서 불편하시다던데….』 걱정스럽게 묻는 부대부인께
『대단치 않사오이다. 염려하지 마시지요.』 국왕은 얼른 받았다.

국왕을 위한 독상이 들어왔다. 그 맞은편 아래가 영의정 이최응의 자
리이다. 이최응도 상궁을 시켜, 잔을 대원군에게 돌렸다.

대원위합하라는 존칭은, 군신사이 중간을 뜻한다. 영의정보다 물론 위
이다.

평소엔 내왕을 끊다시피 하고 있는 형제간인 것이다. 내색을 안하려고
애를 쓰지만, 어쩐지 좌불안석인 이최응이었다.

『안동 대감께서도 한잔 드시지요.』
대원군은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전하께서 등극하신지 몇해가 되었지요?』
부대부인은 아들에게 정감이 어린 눈길을 주었다.

『햇수로 18년이 아니오이까.』
『멀지않아 강산이 두번 변하게 됐구먼.』.

대원군은 이렇게 받고 껄껄 웃었다. 오가는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곤
두세우는 것 같은 국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