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정권도 반인도적행위는 단죄 마땅" ###
### 19년전 「탈출자 사살」까지 처벌...170명 유죄 ###.
독일은 통독후 「시효정지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동독 정권하에
서 권력을 업고 저지른 「정권적 범죄」에 대해서는 독일 통일 시점인 90
년 10월부터 시효를 진행시키는 법이었다.
통일독일이 맞은 「과거청산」의 문제는 구동독의 인권범죄 문제였다.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숨진 사람의 수는 6백명이 넘었다. 사살
명령을 내린 동독 간부에 대한 처벌 요구가 높았다. 그러나 동독은 통
일과정에서 동독에서 일어난 범죄는 모두 당시 동독법으로 처리한다는
합의를 얻어냈다.
동독 최고위층의 행동이 「당시 동독 법으로는 합법」이라는 면죄부를
받기 위한 안전판이었다. 게다가 꽉 닫혀 있던 구 동독의 당시 범죄를
수사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많은 범죄의 공소시효가 끝날 위험
이 컸다.
독일 법조인들은 이에 대해 「시효정지법」이라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범죄자들이 「시효」라는 방어막 뒤에 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었다.
독일 통일 전까지는 반인륜적 범죄가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당시 동독정
권하에서는 기소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당
시 행위자를 일괄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경우 형법 4대원칙의 하나
인 「소급처벌 금지」를 깨뜨리게 되지만 시효정지의 경우는 나올수 있는
여러가지 법률해석 중 하나를 채택하는 것일 뿐, 위헌의 소지도 적었다.
이어 93년에는 업무폭주 등으로 조사가 지연되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시효를 연장해주도록 했다.
시효 정지법이 처벌의 물꼬를 트자, 93년 독일은 6명의 전동독 국방
위원회 위원들을 기소한다. 이들의 죄목은 74년 5월3일 국경수비대에
동독국경을 탈출하는 사람을 사살하도록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무
려 19년전의 사건인데다 이들의 기소 당시 평균 연령도 70세가 넘는 고
령인데도 불구, 처벌되고 말았다.
동독시절 저질러진 6천건의 스파이행위, 4천건의 판검사 직권남용,
5천여건의 동독 비밀경찰 협력혐의자에 대한 조사와 기소가 차례로 이
뤄졌다. 전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곤 크렌츠등 5명의 정치국원과 공군참
모총장, 국방부차관등 8명의 전직 장성, 동독공산당의 핵심인사들이 모
두 법정에 섰다.
동독공산당 정권의 불법행위 처벌을 위한 특별수사부가 각 주정부
산하에 설치됐다. 의회도 별도의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 불법행위 사
례조사를 벌였다.
물론 단죄받게 된 구동독 간부들의 반발도 강하다. 크렌츠는 자신에
대한 재판이 『정치적인 재판 쇼』라고 주장했다. 일부 법학자들 역시 독
립주권국가였던 동독의 국내법에 따른 적법한 행위를 독일법으로 처벌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어느 정권도 인도주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를 할 권한은 없다
는 것이 독일정부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크렌츠의 죄목은 「부작위에 의
한 살인죄」. 당시 내려져 있던 사살명령을 취소시켰어야 함에도 취소시
키지 않은 죄다. 또 당시 동독정부가 조인,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던 인권조약 위반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독일의 사법부는 지금까지 1백70여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나
마 대부분 집행유예등 가벼운 처벌로 풀어주고 있다. 앞으로 각종 재판
에서도 이같은 경향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동독 공산정권
에서 자행된 범죄를 과거 청산 차원에서 분명히 단죄는 하되 국민적 화
합을 추구하는 것이사법처리의 기본 방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