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거리는 등불 (57) ///.
분통이 달아오른 사람들은 기어이 증오의 표적을 골라 난도질을 해야
다소나마 속이 풀린다. 불행히도 이유원의 경우가 그리된 것이다.
이유원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다. 국왕의 의향을 받들어
수호조약에 찬성을 했고, 이홍장의 개국을 권고하는 밀서를 국왕께 올
려 대신들의 논의에 부치기도 했다. 김홍집을 수신사로 일본에 보내는
데는 간여하지도 찬동하지도 않았다. 한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나
타난「조선책략」이 항간에 유포되자, 이유원이 이홍장과 무슨 엄청난 음
모나 꾸민듯이 구설수에 말려든 것이다.
군신관계에 대한 이유원의 신조는 나름대로 뚜렷하게 서있었다. 웬만
하면 국왕의 뜻에 따르는 것이 충성이며 신하된 도리이다. 물론 간언
도 때에따라 필요하지만, 국왕의 의사가 분명할 경우엔 비록 생각이 다
르다 할지라도 자기주장을 고집하여 임금의 마음을 괴롭히지 말아야 한
다.
간혹 언관들이 임금의 잘못을 탄핵하여 칭찬과 갈채를 받는 일이 있
지만, 그건 충이라기보다 공명심에서 나온 치졸한 허풍이다. 이유원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그걸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임금의 눈치만 보고
보신에 급급한다.』.
이따위 중상을 일삼고 있는데, 국왕내외의 진의는과연 뭣일까? 이유
원의 맘속은 자신감과 불안이 엇갈리고 있다.
국왕의 속맘이라는 것도 형세에 따라서는 조석으로 변하는것.
이유원은 좀 과장해서 건곤일척의 심정으로
『…영중추부사의 자리를 더럽힌 지도 여러해가 되었나이다. 나라 안
팎의 어려움이 갈수록 태산같은 이때 학식이 천박하고 재간이 없으며
덕이 모자란 신으로서는 도저히 높은 벼슬자리에 눌러 앉아 있을 수가
없사오이다. 삼가 치사할 것을 청하니 지체없이 윤허해 주소서.』
짤막한 차자를 올렸다.
치사란 실직이고 한직이고 간에 아예 사양하고 벼슬길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이유원의 나이 올해 67세. 80이 넘도록 조정에 나섰던 정원용
에 대면 하직도 멀었다.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국왕은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싱거운 비답을
내렸다.
『치사를 허락한다. 봉조하를 명할 것이다.』.
대개 두세번 만류하는 것이 관행인데, 이건 너무나 박절했다. 영의정
으로 권토중래할지도 모르는 이유원을 경계하는 이최응의 농간이 개재
했을 법도 했다. 아니면 그를 규탄하는 중론에 대한 국왕의 가납인지도
모를 일이다. 봉조하는 종2품이상의 벼슬아치들에게 주는 명예직으로
종신토록 녹봉을 내린다.
이유원은 깊은 실의에 빠졌으나,
『내일을 알 수없는 난세인즉 조정에서 물러나 있는 것이 명철보신의
길이다.』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기도 했다.
여기는 안동의 이최응댁, 몇년전 화재가 나 반쯤 타버린 가택을 공들
여 수리하고 사랑채를 널찍하게 꾸몄다. 아침 문안객은 달리 받지 않고,
객실엔 민태호와 겸호, 그리고 조영하등 세사람이 도사려 앉아 잣죽을
대접받고 있다.
주인이 헛기침소리와 함께 들어서자 손님들은 몸을 일으켜 가볍게 머
리를 숙였다.
『식전에 오시느라 수고들하셨소. 자 앉으십시다.』
『자제분은 좀 어떠하오이까?』.
각기 좌정하자 먼저 민태호가 물었다. 이최응의 외아들 재긍이 가슴
앓이로 누워있다. 벼슬은 참판급이다.
『그만 하지요. 오늘 세분을 오시라 한것은 대강 짐작하고 계실줄 알
지만….』
하며 이최응은 말문을 열었다. 동생인 대원군과는 딴판으로 몸체가
크고 낯빛이 검다. 일본과 협상하고 수교하는데 거센 반대와 비난에 개
의치 않고 조정 공론을 이끌어 왔다.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양반가 사랑에선 그를 빈정거리는 뒷공론이 끊이질 않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