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수는 수건을 감고 욕탕에서 나왔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혹
시 피임약이라도 사러 갔는지도 모르지.

그는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한 모금씩 마시며 그녀를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찬수는 서서히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음이 변해서 가버린 것 아냐? 그는 다 마신 맥주의 캔을 찌그러
뜨렸다. 혹시? 그는 벌떡 일어나서 양복 윗주머니를 살폈다. 지갑
은 그대로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런 여잔 아니야.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러다가
그는 지갑의 느낌이 평소와 달라서 행여나 하고 안을 살펴보았다.

지갑 안은 텅비어 있었다. 찬수는 멍하니 지갑을 들고 서있었다.다
행히 신분증은 그대로 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친
구녀석들이 여자들에게 당하면 비웃었더니 내가 그 꼴이 될 줄이야.

에이, 재수없어. 호텔을 나서면서 찬수는 투덜댔다. 차에 키를
꽂고도 그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아무래도 꿈을 꾼 것만 같았다.

배우를 하면 아주 잘하겠군. 그렇게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다니.
아냐, 내가 어리숙했지.

비가 와서 도로가 미끄러웠지만 찬수는 과속을 했다. 그렇게라도
풀지 않으면 화가 삭여지지 않을 것 같았다.

신호에 걸린 찬수는 옆에 멈춰 서있는 여자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다.
미모의 여성은 그와 눈을 마주치고도 피하지 않았다.

요즘 여자들은 정말 대담해. 다른 때 같으면 일부러 여자운전자와
눈길을 마주치고 은밀한 유희를 즐겼을 그는 갑자기 모든 여자들이 징그
러운 뱀처럼 느껴졌다.

신호가 바뀌자 그는 재빠르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오늘같은 날
은 아내 품이 제일 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