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총재는 로태우전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을 받았다고 시인
한 뒤 특히 두가지 대목을 강조하고 있다. 이 돈이 부정한 돈인지 꿈에도
몰랐다는 것과, 돈 받은 사실을 숨길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모두
가 자신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는 거꾸로 20억원 파문이 자신
의 도덕성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고 느끼는 반증이기도 하다. 「김총재의
앞날」에 도덕성 시비가 최대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음을 본인 스스로 우려하
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자금 정국이 김총재의 앞날에 어떤 영
향을 미칠지는 이 대목에서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김총재는 정계복귀 이후 「새정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어 왔다. 야당
다운 선명성과 민주성을 과시하면서도 과거의 구태에서 벗어나 참신성, 도
덕성, 투쟁 일변도 보다는 의회주의를 중시한다는 등등이 「새정치」의 주요
개념이었다. 김총재는 「돈」 문제에 대해서도 『전국구 선정에 과거와 같은
특별당비를 받지 않겠다』 『지구당 운영비도 정책개발비 등을 제외하고는
중앙당에서 지원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여기에는 철저한 당비 중심의
당 운영이 대전제를 이루고 있었다.

20억원을 받은 것은 분명 「과거」의 일이다. 넓게 보면 정치권의 관행 속
에서 이뤄진 일이다. 대통령이 당선 이후 미래를 향한 약속으로 『이
제부터 단 한푼의 돈도 받지 않겠다』며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했듯, 김총재
도 「20억원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라고 정리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
이다.

하지만 국민 여론도 이를 받아들일 것이냐에 문제가 있다. 김총재가 야
당 대통령후보로서 대선 자금을 받았다는 사실, 그것도 5.18주모자의 한당
사자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들이
「새정치」를 주창하는 김총재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은 부
인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일로 끝나기가 어려운 이유인 것이다.

김총재의 이런 이미지 훼손은 내년 총선 등에서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
인가. 우선 국민회의의 확고한 지역기반인 호남의 이탈은 거의 없을 것이
라는게 중론이다. 김옥두의원 등 김총재 핵심 측근 의원들은 『오히려 김총
재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호남 유권자들은 더욱 힘을 합쳐 왔고 앞으로
도 그럴 것』이라고 단언한다. 다른 의원들도 『호남 유권자들은 이번 사태
를 김총재에 대한 탄압으로 여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민회의는 그렇지
않아도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파문 배경에 집권 핵심부가 관련돼 있다고 주
장하고 있다. 비자금을 처음 폭로한 민주당 의원과 집권 핵심부의
사전 교감이라는 「각본설」이 그것이다. 3김 청산과 세대교체를 향한 정계
개편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주장이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호남에서의 김총
재 지지 강도를 더욱 높이는 방향으로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 「잠재적 지지자」 등돌릴 가능성 ///.

그러나 문제는 김총재에 대한 「잠재적 지지자」들의 향방이다. 김총재측
은 호남을 중심으로 한 최저 30의 절대적 지지에 6∼7의 지지만 추가하
면 대권 승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 추가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온건 중도 노선과 중산층 정당임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김총재에 대한 잠재적 지지계층이다. 김총재의 이미지 훼손으로 이
들이 등을 돌리게 될 경우 김총재가 입을 타격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의
대권 구상에 차질이 올 가능성도 있다.

「김총재의 앞날」을 개인적 이미지 차원에서만 전망할 수는 없다. 비자금
파문으로 인한 기성 정치권 전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그리고 이번 파문
이 도화선이 될 지도 모를 정치권 전체의 지각 변동 가능성이라는 보다 넓
은 틀에서 봐야 할 것이다.

이번 파문으로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 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김총재뿐 아니라 자민련 총재도 「1백억 계좌설」로 여론의 도
마 위에 올라 있다. 『어디 그들뿐이겠느냐, 다른 정치인이라고 깨끗하겠느
냐』는 게 일반의 여론이다. 그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정치판 물갈이, 낡
은 정치의 청산, 새로운 정치세력 등장에 대한 기대욕구 등으로 이어질 가
능성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그 초점은 기성 정치권의 대표로 인식되는
두 김총재에게 모아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분위기의 확산 여부는 내
년 총선에서 드러날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정치권의 지각 변동, 구체적으로는 정계 개편 움직
임이 현실화될 지 모른다. 국민회의측은 민자당 민주계, 민주당, 정치개혁
시민연합 등 반3김과 세대교체를 주창하는 세력들의 대연합 「음모」를 주장
하고 있다. 「신3당 합당」에 의한 호남 고립작전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개
혁 대 반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총재로 상징되는 구시대 청
산을 외칠 것이라는 「각본설」의 연장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면 총재는 총재와 연합 작전을 구사
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1백억설과 20억원 수수에 대
해 서로간에 공격을 않고 휴전을 하고 있는 요즘의 상황은 그럴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두 김총재의 연대 여부, 그리고 이들 세력과 반3김 연대 세
력과의 일대 접전에서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이냐에 따라 총재의 앞날
은 달라질 수도 있다.

김총재의 앞날이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도 많
다.

앞으로의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통
령이 노전대통령으로부터 지원받았다는 대선 자금이 뇌관이라는 것이다.김
총재측은 이를 김대통령을 공격할 수 있는 「양수 겹날의 칼」로 여기고 있
다. 김대통령의 대선 지원 자금이 공개되고 그것이 국민회의 주장대로 「천
문학적인」 규모에 달할 경우 상황은 반전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노전대통
령이나 김총재를 향한 비난은 일거에 김대통령에 대한 비난으로 역전되리
라는 것이다.

/// 받은 돈 20억 넘을 경우 치명상 ///.

반대로 김대통령이 대선 지원 자금을 끝내 공개하지 않으면 그의 도덕성
을 공격 무기로 삼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공개 액수가 국민회의 주장
과 다를 때는 「은폐 축소」로 몰고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회의가 연일
김대통령에게 『스스로 대선 지원 자금을 공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
는 것은 바로 이런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대변인은 『김대통령이 노전대통령으로부터 천문학적인 대선 자금
을 받았으면서도 자신은 밝히지 않고 총리에게 두번이나 철저 수사 지시를
할 수 있는지, 자신의 성역은 지키려 하고 남에 대해서는 성역없는 조사를
지시하는지, 자신은 공명정대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공명정대를 강요하는
지, 자신에 대한 의혹은 밝히지 않으면서 남에 대해서는 한점 의혹도 남기
지 말라고 지시할 수 있는지, 자신이 관여된 문제에 대해선 언급도 안하면
서 남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를 지시할 수 있는지』라고 반문하며 『이것이
문민정부의 도덕성을 실감케 하는 것이냐』고 공격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이에 대해 정면돌파로 나갈 것인지, 정치적 고려에 의한 타
협으로 나갈 것인지에 따라 김총재에게 미치는 영향은 달라질 것이다. 특
히 김대통령이 정면돌파로 방향을 잡고 이 과정에서 만약 김총재가 받은
돈이 20억원 이상으로 드러날 경우 사태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
될 것이다. 그런 돌발 상황이 없을 경우라면 김총재는 상처를 씻고 다시
파워게임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뒤에는 여전히 호남이라는 부동의
지지기반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김랑기 정치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