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고성 구상덕의 37년 기록/농촌기록 풍부 한국학총서 에 실
려 "신미년(1751) 12월30일. 전 23량으로 다룡동 정창구의
논 3두를 샀다. 금년의 이앙은 제때에 하였으나 보리의 흉작은 근고
에 드물다. 6, 7월의 물가는 2량으로 조 6두, 쌀(미) 3두,
보리(맥) 4두를 살 수 있었다. 논에서 나는 곡식은 제법 좋은 편이
나 보리는 흉작이었다. 겨울이 되어서는 2량으로 정조 9두, 황조 1
0두, 쌀 4두 6~7승을 살 수 있게 됐다." 각종 물가를 비롯한
조선후기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입체적으로 밝혀줄 일기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시대 사회경제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이 문서는 경남 고성지방의 향반이었던 월봉 구상덕(1706~1761)
이 스무살 나던 1725년부터 별세하기 3일전까지 만37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일기인 승총명록 5책.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정순우
교수팀은 최근 경남 고성 현지에서 이 자료를 수집, 해제를 붙여
한국학자료총서 7 로 펴냈다. 이 일기는 그동안 관청의 공식문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각종 농촌생활관련 기록을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어
앞으로 이 분야연구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승총명록
의 가장 큰 특징은 3백79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속에 양반의 일기
치고는 지나치게 시시콜콜하다 싶을 정도로 농촌생활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점. 저자 구상덕은 세종때는 직제학까지 배출했으나 1
8세기 들어서는 뚜렷한 벼슬을 내지 못하고 경남 고성 농촌에 정착했던
가문 출신.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30세까지 5번이나 과거에 응시했
으나 낙방한 뒤 농사에 몰두했던 그는 위의 예문에서 보듯 자신이 팔고
산 논밭의 가격은 물론 쌀, 보리, 조, 콩 등 각종 곡물가격, 청
어 등 생선가격 등의 추이를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매일 매일
의 날씨, 지진 기근 홍수 가뭄을 비롯한 각종 천재지변 등이 날짜별로
모두 기록돼 있으며 벼농사와 보리농사의 파종시기, 이앙기간, 춘궁기
의 생활고 극복, 도둑, 자녀교육, 마을의 관혼상제, 관가와의 관계
등이 세밀하게 기록돼 있어 당시의 일반 민중들의 생활상을 재구성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한편으로는 봄에 꿔줄 때 1되의 크기가 가
을에 거두어들일 때는 갑자기 커져서 1말을 부어도 모자랄 정도로 부패
했던 당시의 환곡제도, 고리대금 문제 등 당시 농촌사회가 공통적으로
겪었던 각종 비리에 대한 비판과 건의 등도 포함돼 있다.아울러 지역
아동들에 대한 교육, 서원과 향교의 실태와 도적떼, 이인좌의 난 등
각종 민란과 소요등 당시의 주요 사건들도 기록하고 있다. 승총명록
을 해제한 정문연 정순우교수는 "이 자료는 지금까지 부진했던 조선후
기 경제-사회사 연구에 구체적 실물자료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