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 무가고' 알뜰쇼핑에 전력/한국주부들 수시로 정보교환/점잖빼
던 가장도 장보기 합류 모스크바에 있던 지난 1월 서울의 친구로부터
신년 선물을 받았다. 어렵사리 인편을 통해 전달된 선물이 라면 두박
스. 함께 도착한 편지에는 먹을 것도 부족한 곳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는 내용이었다. 서울에서 모스크바로 출장나온 사람들의 가방속
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 김치, 고추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비누 타월
라면 콜라 화장지등으로 꽉 차있다. "러시아에는 아무 것도 없다더라"
는 전언때문. 그러나 지금 러시아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생필품 부
족이 아니다. 외국인들은 물론 현지인들도 "지옥같다"고 하는 것은 상
상을 넘어서는 살인적인 물가고다. 좀 더 싸고 좀 더 싱싱한 야채와
식품을 구하기 위해 러시아 주부들은 한 겨울에 빨갛게 언 뺨을 하고서
도 거의 매일 반나절이상을 모스크바의 상점들을 뒤지고 다닌다. 대부분
의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러시아에서 소비재값에 상한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료스카 란 애칭으로 부르는 외국인 전용상점의 물가는
천정부지. 간장 한병에 10달러50센트(약 7천8백원), 쌀 20㎏에
1백10달러(8만6천원)나 한다. 햄 소시지 등 서구에서 들어오는
식품도 세계 최고 값으로 판매되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에서 온 사람
들은 아예 본국으로부터 식품등 생필품을 컨테이너로 공동구입, 나눠 쓰
고 있으나 요즘에는 러시아 세관 당국의 시비로 이 또한 여의치않다.
부지런한 한국 주부들은 물가고를 앉아서 당하지 않는다. 또순이 들은
말도 설고 치안 사정도 그리 좋지 않은 모스크바에서 장보기 모임을
만들어 단체로 쇼핑을 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어느 골목, 어느 상점이
좀 더 싸더라든지, 물건을 믿을만하다든지, 아주 쓸모있는 정보들이
오간다. 서울서는 가득 점잖빼던 가장들도 쇼핑 대열에 열심히 합류한다
.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취재차 들렀던 모스크바 번화가의 국영 상
점에서, 소시지 코너앞에 장사진을 친 사람들 너머로 가격표를 보고 놀
라지 않을 수없었다. 외화 상점에서 1㎏당 40달러를 호가하는 소시지
가 6달러 정도에 팔리고 있는게 아닌가. 두말할 것없이 4㎏을 사들고
가 자랑을 했다. 집사람의 반응은 의외였다. "먹으려고 사왔느냐"는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상표와 산지가 달랐고, 그나마 유효 기간
이 1년 이상 지나버린 제품이었다. 이런 것까지 꼼꼼히 살피고 쇼핑을
해야 하니, 웬만하면 믿고 아무 것이나 살 수 있는 나라에서 온 주
부들이 얼마나 바쁠 것인가. 그러나 러시아 주부들이 겪는 고통에 비
하면 외국 주부들의 고민은 매우 사치스러운 것이다. 부부의 합산 소득
이 월 3백달러에도 못미치는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현재의 물가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모스크바의 소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
을 쓰고있다. 직장을 마치고 나서도 청소, 빨래일과 노점상등 닥치는대
로 돈벌이를 찾아 나선다. 지금도 많은 주부들이 국영상점을 돌며 조금
이라도 싸게 장을 보기위해 시내를 일주하는 지하철을 메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