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살때 피아노 시작,86년 도쿄서 화려한 데뷔/"음악은 즐겁게 심
각한 공부로 여기면 곤란" 지난 15일밤 프랑스 콜마시의 성마태교회
대예배당. 제단을 개조한 무대로 걸어나오는 예브게니 키신(25)은
치켜올린 곱슬머리에 창백한 안색 탓인지, 체형에 비해 머리가 두드러져
보이는 가분수 의 외모였다. 고개를 살짝 치켜들고 단숨에 인사하고
피아노앞에 앉는 로봇같은 경직과 어색함은 두손이 건반위에 올려지는 순
간 눈녹듯 사라져버렸다. 이날 키신의 베토벤 황제 협주곡 협연(스
베톨라노프지휘, 러시아국립교향악단)을 지켜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는 "
청중의 가슴을 채워준 연주,피아노를 더이상 잘 다룰 수가 없다"며 감
탄했다. 음향상태 큰문제 안돼 세기적 천재 라는 찬사속에 RCA
빅터 레이블로 낸 도쿄 리사이틀 실황연주 레이저디스크를 비롯, 뉴
욕 카네기홀 데뷔연주(90년), 카네기홀 쇼팽리사이틀(93년) 등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피아노의 슈퍼스타 키신을 프랑스 콜마현지에
서 만났다. -연주장의 음향조건 등 휴가시즌의 연주환경은 정규시즌에
비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휴가시즌 연주의 매력은 무엇인가. "
연주자와 청중 모두 심신의 긴장을 풀고 음악을 즐기는 것이 휴가시즌
음악제의 매력이다. 연주가 좋고 음악만 살아있으면 연주장의 음향상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베토벤 곡의 연주는 쇼팽, 라흐마
니노프, 리스트 등 낭만곡을 즐겨 다뤄온 당신으로선 모처럼의 선곡이다
. 베토벤음악의 후속 연주와 녹음을 기대해도 좋은가. "베토벤의
황제 를 10여번 연주했다. 내가 지금까지 낭만음악을 즐겨 연주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낭만곡 전문연주자로 불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
는 베토벤의 소나타 등 고전적 레퍼토리도 오랫동안 공부해왔다. 베토벤
은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연주해보고 싶은 중요한 작곡가의 한사람이다.
" -신동으로 불리던 10대와 비교해 20대 중반을 맞은 지금 음악
활동에 변화가 있다면. "뭐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음악적으로 레퍼토리
가 확대됐고, 곡을 배우고 소화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예전이나 지금이
나 변함없는 것은 항상 배우고 있다는 점이다." 키신은 콩쿠르를 통
하지 않고 성공한 연주자다. 그는 두살때 피아노를 치고, 여섯살때 모
스크바 그네신영재학교에 입학했다. 그때 만난 스승이 여류 피아니스트
안나 파브로브나 칸토르. 안나는 키신이 콩쿠르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
기능공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았고, 키신은 지금도 그런 무모함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긴다. 그네신시절부터 지금까지 키신은 스승 안
나를 떠난적이 없다. 안나는 4년전 키신가족과 뉴욕으로 이주, 함께
살면서 키신을 돌보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음악공부를 시작한다. 이점은 러시아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영재교육의 수혜자로서 특별교육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
나. "러시아의 부모들 역시 음악교육에 매우 열정적이다. 예술을 아
끼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칠 때
장차 음악이 그들 인생에서 어떤 즐거움이 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일본을 여섯번이나 방문했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음악을 심각한 공
부로 여기는 것같았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98년까지 연주
해야 -콜마음악제를 창설하고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블라디미르 스피바
코프와는 각별한 사이로 듣고있다. 그와의 실내악활동 계획은? "스피
바코프는 내게 연주자의 길을 일러준 스승같은 분이다. 나는 RCA 레
이블로 녹음한 대부분의 협연을 스피바코프의 모스크바 비르투오지와 함께
했다. 스피바코프는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다. 또한 그는 스피바코프재
단을 만들어 유능한 연주자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탁월한 기획자이기도 하
다. 나는 스피바코프, 유리 바쉬메트와의 실내악연주에 관심이 있고,
녹음계획도 갖고 있다." -한국을 방문할 계획은? "98년까지는
스케줄이 꽉 찼다. 오는 가을 일본에서 비교적 장기간의 연주일정이 잡
혀있다. 기회를 봐서 일본순회 연주때 한국을 찾을 수 있을지 검토해보
겠다." 90년 뉴욕필과 협연 키신은 10살때 모스크바에서 데뷔했
다. 12살때 키타옌코 지휘의 모스크바필하모닉과 쇼팽의 협주곡 1-2
번을 협연, 돌풍을 일으킨 키신은 86년 도쿄에서 스피바코프 지휘의
모스크바 비르투오지와 협연함으로써 유럽-미국에 앞서 일본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키신은 87-88년 모스크바 비르투오지와 베를린-잘
츠부르크를 순회하고, 베를린 필하모닉(카라얀) 런던심포니(게르기에프)
와 잇달아 협연했다. 키신의 쇼팽연주는 특히 화제였다. 그는 90년
9월 주빈 메타의 뉴욕필하모닉과 열흘간 네차례 쇼팽협주곡을 협연해 대
성공을 거둔데 이어, 곧바로 카네기홀 1백주년 기념무대서 데뷔 리사이
틀을 가졌다. 88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으로 첫 스튜디오
레코딩을 내놓아 평단의 절찬을 끌어낸 키신은 프로코피에프-모차르트-쇼
스타코비치의 협주곡을 스피바코프의 모스크바 비르투오지, 오자와세이지의
보스턴심포니 등과 잇달아 녹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